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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13. 2023

영화를 보면서 딴생각을 하는 이유

- 스크린을 보면 스크린 밖을 생각하라

요즘 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특히나 길고 무더운 여름을 나는 데 그만한 피서가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평일 조조영화’는 자유인이 된 우리 부부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가성비 좋은 넓은 영화관에 손님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황제 관람'이 따로 없다.      


최근에 지역 도서관에서 들은 영화 이야기 강의도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소설이나 미술(화가), 철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한 영화 강의도 있어서 골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 같은 공공기관의 교양 강의 중에 영화는 인기가 높아 빨리 마감되기 쉽다. 신청을 서둘러야 한다. 요즘 대학가 인기 강좌는 수강 신청 전쟁이 일어날 정도라는데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난다.       


이런 인기는 영화가 그만큼 대중적이고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즐길 만한 메뉴도 다양하다. 시간 때우기용 오락영화부터 진지한 예술영화까지 골라서 보기도 좋다. 취향이 특별해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입맛에 맞는 영화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시기를 놓치면 OTT나 다른 경로를 통해 보기도 쉬워졌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영화에 빠진 이유는 무엇보다 '분위기 전환' 때문이다. 나는 일상 속의 소소한 변화, 그것도 안정 모드 속의 새로움을 좋아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것보다 감당할 정도의 적당한 변화와 설렘을 선호한다. 영화관을 가면 공간이 주는 안락감에 기분이 느긋해진다. 여름이라면 북극 냉방 속에서 잠깐이지만, 2시간여 쾌적한 바캉스를 즐길 수 있다. 팝콘이나 커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영화의 재미에 편집이나 장면 전환이 중요한 것처럼 일상에도 분위기 전환은 필요하다.       


영화가 주는 미덕 중에 ‘생각의 전환’ 또한 크다. 별다른 변화가 없는 일상이 반복되면 느낌도 감각도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는 천변만화의 세상이 펼쳐진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하고, 때로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생을 '영화처럼 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늘 영화 찍듯이 살 수는 없지만, 우리들 인생에도 영화처럼 다채롭게 빛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모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최고 행운은 우리들 삶에 관해 말을 거는 영화를 만나는 것. 내가 만난 영화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보면 스크린 밖도 잘 살펴봐야 한다. 영화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 앞의 현실을 물어야 한다면서. 그러니 영화에만 매몰되지 말고 자꾸 딴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에 가면 보이는 그림만이 아니라 그림 너머를 생각하라, 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 우리들 삶에 말을 거는 영화들      


지난달에 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비현실적인 설정의 재난영화다. 어느 날 대지진으로 붕괴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와 그 주민들의 이야기다. 딴 세상 이야기 같지만, 보는 재미와 함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990년대경 노래방 최고의 애창곡인 윤수일의 '아파트'가 이병헌의 입을 통해 멋들어지게 흐를 때는 '중산층의 자부심'처럼 흥이 넘친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파트 단지든 어디든, 울타리가 생기거나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늘어난다. 영화는 이 같이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묻는 인간의 생존조건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선한 의도는 모두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를 환기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의 현실에 관한 질문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 그런 영화는 좋은 영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을 대표해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에 도전한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K컬처가 잘나가는 이유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다른 이름이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이어 영화, 드라마 등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언제나 우리 삶의 문제를 질문해 왔다. 한국 창작자들은 늘 스크린 밖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칸 영화제 당시 인터뷰에서 "<기생충>이 너무 한국적인 상황의 문제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영화를 본 외국인들이 "우리 상황과 똑같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해서 놀랐다고 밝혔다. 현대 자본주의의 계급 모순과 갈등, 그 안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K컬처의 강점은 이렇듯 '재미 속에 의미'를 녹여낸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인류가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포인트를 콕 잡아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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