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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20. 2023

공간의 위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

- 카페와 뮤지엄 스테이, 여행이 내게 주는 힘

지난주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춘천의 ‘뮤지엄 스테이’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2시간여 거리라 오랜만에 여행 운전하기에도 부담은 없었다. 가평 춘천 지역은 길 주변이 산과 숲, 강과 계곡으로 이어져 언제 가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캠핑과 수상 놀이에도 좋다.


특히나 멋진 카페가 많다. 색다른 테마의 카페가 물 따라 산 따라 즐비하다. 넓고 푸른 잔디밭 너머 북한강이 보이는 한 카페에 들어섰다. 왼쪽으론 꽃들이 만발한 화사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삼각대까지 비치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사진 찍기 명소인 듯,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 명상(?)에 빠져 있다.    


북한강을 따라 들어선 카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가평의 자라섬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도착한 이상원 미술관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화악산(1,468m) 자락 아래 깊고 서늘한 청정기슭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180억 원의 사재를 들여 2014년에 개관한 곳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나 경관이 놀랍기만 하다. 사실 미술관이나 이상원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공부나 노는 일이나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선물


세상을 살다 보면 유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곳이 있다. 좋은 기운, 맑은 에너지가 머무르는 곳이라 그런 걸까. 우리가 애써 멋진 카페나 풍경,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나를 위한 시간, 자신을 위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공간의 힘은 대단하다. 사는 일에 지치고 쪼그라들어도 좋은 공간에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지고 마음이 환기된다. 아름다운 곳에 나를 두는 것은 나를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행위이다. 나는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
- 임지영(예술교육가, <느리게 걷는 미술관> 저자)     


'뮤지엄 스테이'는 조식 뷔페와 공방 체험, 미술관 관람 등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라 관심 있는 방문자는 만족감이 높아진다. 숙소나 레스토랑은 호텔 스타일로 운영한다. 펜션처럼 취사 시설은 없어도 모든 게 깔끔하고 청결하다. 숙소 옆의 계곡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바위틈을 따라 흐른다. 짙푸르게 우거진 숲이 산 자락 미술관을 감싸고 있어 사람들 마음은 저절로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이상원 미술관 풍경, 오른쪽으론 산 자락 따라 물 맑은 계곡이 이어진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


이상원 화백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개척한 사실주의 화가다. 한지 위에 먹과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동양화의 담백함과 서양화의 사실적인 특징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의 관심은 우리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고 비천한 구석이다. 노쇠하거나 버려지거나 세월의 풍파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소멸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림은 역설적으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1935년 춘천 출생인 이화백은 인간적으로나 예술가로나 독특한 분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고향에서 겪은 후 무일푼 상경해 극장 간판 그리기와 미 8군 초상화 납품 등 상업화가의 길을 걷는다. 주문이 넘쳐 30대에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만, 그는 고심 끝에 순수화가라는 힘든 여정을 선택한다. 40대에 국전, 동아미술제 등에 입상하고 60대 중반에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지의 해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다. 일반인이 흔히 알만한 그의 작품은 35세에 그린 안중근 의사 영정이 대표적이다.       


한쪽 팔이 없는 어부를 그린 <동해인, 1988>과 전쟁과 노동을 떠올리게 하는 <군화, 2010> 한지 위에 먹과 유화물감.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우리네 삶의 진정성이 살아있어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동해인(東海人)’ 연작에서는 바닷가 평범한 촌로와 어부들이 등장하고, 한때는 삶의 현장에서 요긴하게 쓰이던 그물, 어구, 밧줄, 마대 등이 이제는 쓸쓸한 잔해로 남아 눈길을 끈다. 모두 생멸의 순환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말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생의 자취를 지닌 채 아직 '살아있음'을 말한다. 삶은 저항하며 계속된다는 듯이.      



경제 성장의 저력이 문화적 성취로 이어진다


한국인들은 격동의 역사만큼이나 고단한 삶을 살았다. 한 인간이 지닌 인생의 내공과 성숙도 측면에서 한국인만 한 민족이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80여 년의 세월, 자신의 길을 개척한 오늘의 이상원 작가를 있게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문화, K컬처가 왜 인기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간다. 유난히도 힘겨운 역사를 견뎌낸 한국인들의 단단한 내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엔 신산한 삶의 애환에서 우러나온 풍부한 감성 또한 담겼을 것이다.


지난 100여 년 우리는 유례없는 변화와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고도성장, 군사 독재와 민주화, 개방과 세계화 물결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놀랍게도 1960년대 아프리카 가나 수준의 빈곤 국가에서 한국은 어느덧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 이런 성장의 역사는 K컬처의 성취와 닮은 점이 많다.

     

격동의 역사가 만들어낸 압축 성장에는 영광만큼이나 그늘도 짙게 마련이다. 고장 난 자본주의가 잉태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은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또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찾아가는 데 문화의 역할과 의미가 그만큼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민이 이룬 경제 성장의 저력이 K컬처의 문화적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 뮤지엄 스테이에 포함된 조식 뷔페도 푸짐하고 실하다.



*대문 사진은 가평의 한 카페 풍경(어텐디드가든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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