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아내와 함께 2편의 영화를 봤다. <베테랑>은 1편이 준 강렬한 기억이 너무 큰 탓일까. 거침없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 2편은 우리에게 다소 실망스러웠다. 반면 임영웅의 상암경기장 콘서트를 보여준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대만족. 좌우 양쪽까지 스크린 3면을 270도 활용하는 ScreenX 상영관은 콘서트 영화에 걸맞게 웅장한 무대 경험과 몰입감이 최고였다.
1인당 3만 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최저 10만 원 이상인 실제 공연에 비하면 ‘매우 만족’이다. 200석 극장에서 조조 타임으로 8명의 관객이 봤어도, 4만 명이 운집한 현장의 열기는 충분히 실감 났다. 여유 있게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특히나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를 선호하지 않는 우리에겐 최고의 선택.
우리 부부는 딱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다. 이미 BTS급의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임영웅이라도 남의 일 같다. 웬걸, 공연을 보고 나니 갑자기 임영웅이 좋아진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다정함’에 끌린다
김이나 작사가는 임영웅 음악의 특징으로 ‘다정한 톤’을 든다. 임영웅의 대표 이미지는 바로 이 ‘다정함’이 아닐까 싶다. 다정하다는 건 마음이 따뜻하고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매력적이며 호소력이 짙다. 또한 표정과 외모, 생활 자체가 성실하고 모범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미용실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한 삶이 몸에 배지 않았나 싶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평소 생활에서 다정한 청년의 모습이 느껴졌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고 꼼꼼히 식사를 챙겨주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손흥민이 ‘흥민형’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후배들 또한 ‘영웅형’을 따른다고 한다. 사람이 유명해지고 신분이 달라지면 인간성 자체가 변하기 쉽다. 그의 사생활까지 알 수는 없지만, 임영웅은 그런 자신을 경계하며 관리하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다정하기보다는 까칠한 남자에 가까웠다. 친구도 몇 사람과 깊게 사귀는 편이다. 퇴직한 후 여유가 생기면서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면을 고심하게 된다. 출근할 일이 없는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은 아내다. 가사 분담을 열심히 하면서,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자주 보내려고 한다. 9월에 시작한 대학 강의에서는 37명의 수강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중이다. 친숙한 관계가 아닌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2. 꾸준히 성장하는 ‘아티스트’
임영웅을 비롯한 트롯 스타들의 장기는 이른바 ‘뽕끼’다. ‘뽕끼’는 트롯의 전유물처럼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형 발라드나 K팝의 여러 음악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트롯의 핵심인 ‘애상과 비탄’이 한국인의 ‘한’의 정서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뽕끼’의 감각은 특정 장르의 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감상적·통속적 요소가 강조된 멜로디나 리듬, 가창법의 감각을 두루 아우른다.
*참고: 김성민, <케이팝의 작은 역사>, 2018.
임영웅의 음악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며, 순식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성에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그의 트롯은 구슬프거나 청승맞지 않으며, 어떤 격조와 고양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트롯 가수가 아니다. 지금 그의 음악은 발라드, 팝, 재즈, 힙합, 댄스곡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 든다.
임영웅은 ‘트롯 경연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꿈을 이뤘을 때, “이제 더 이상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며 꾸준히 성장하는 자신을 꿈꾼다고 말한다.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음악 작업을 하나씩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노래만 부르며 현재에 머무는 ‘가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진정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본다. 인생에서 성공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3. 팬덤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그의 이름에서 온 공연명인 ‘아임 히어로’는 ‘우리 각자가 영웅’이라는 의미도 전달한다. 흔히 영웅이라고 하면 나하곤 상관없이 멀리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정의로운 일을 행하는 ‘의인’이나 마블 영화 속 슈퍼맨이 그들이다.
그의 팬덤 이름은 ‘영웅시대’라고 한다. 임영웅의 이름이면서 그를 사랑하는 팬 모두가 영웅이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자기 인생의 영웅이 된다. 모든 연예인, 유명인들이 그렇겠지만, 팬들을 생각하는 그의 자세 또한 지극함이 느껴진다.
연예인의 팬덤을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에게도 팬이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삶의 자양분을 만들어준 소중한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는 건 중요하다. 임영웅은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건강관리, 체력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자신을 돌보며 관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삶의 진정한 영웅을 위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우리 자신이나 똑같은 건 하루 24시간을 사는 일이다.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가는 건 각자의 몫이다. 저 멀리서 빛나는 스타를 우러러만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삶 속에서 스스로 영웅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일은 늘 지금, 가까이에서 시작한다.
우리 시대의 모든 평범한 영웅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오늘도 활력과 행복으로 채워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