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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27. 2024

20대 학생들과 수업하다 놀란 3가지

교수에게 펜과 물을 빌리는 요즘 학생들

가을 학기를 시작한 지 4주가 지났다. 교양학부 <K컬처> 과목으로 4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난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놀라는 일이 많아진다. 가끔은 60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상황과 마주치지만, 한편으로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구나,라는 게 실감 난다. 예전 내 학창 시절과 비교하다간 ‘꼰대 소리’ 듣기 쉽다. 생각을 뜯어고쳐야 내가 편하다.


학생들의 사고나 행동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요즘 대학생들은 코로나 탓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한 후유증도 크다. 나를 놀라게 한 학생들, 달라진 세상을 절감하는 순간을 돌아본다. 젊은이들의 생각과 톡톡 튀는 청춘의 매력 또한 자주 느낀다.



1. 교수에게 펜을 빌리고 물을 나눠 마시자고 한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즉석 과제와 발표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돌아보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케팅 관점에서 자신을 알고 스스로 삶을 구상해 보는 <Me-마케팅> 3단계 작업의 시작이다. 과거(내 과거 돌아보기) -> 미래(위시리스트 작성) -> 현재(지금 할 일 계획)의 순서로 자신을 마케팅하는 것이 요령이다. 나눠 준 백지에 답을 기록한 후 2인 1조로 토론과 소개를 진행한다.


작성 시간이 시작됐는데 멀뚱멀뚱 앉아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한 학생이 내게 말한다. “교수님, 펜 좀 빌려주시겠어요?” 나는 아차, 싶었다. 펜을 안 가져온 학생이 많은 것이다. 모바일 세대인 이들에겐 갈수록 종이에 펜을 쓰는 일이 줄어든다. 봄 학기에는  ‘기말시험 시간에’ 펜을 빌려달라는 학생까지 있었다. 요즘 수업 중엔 모두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을 본다. 교수가 준비한 강의자료를 보는지, 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요즘 대학교 교실에선 놀랄 만한 일이 많다. 어떤 학생은 내가 마시던 생수병을 보더니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본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자는 건 예사고, 시험시간이라도 시작한 지 5분, 10분만 지나면 줄줄이 답안지를 내고 나간다. 예전엔 커닝(?)이라도 시도했는데 요즘엔 그마저 눈에 띄지 않는다. 모르면 ‘쿨하게(?)’ 빈칸으로 남겨두고 과감하게 답안지를 던진다. 이 또한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고 경쟁한다는 뜻 아닐까.


달라진 대학생활을 들여다보며 시대와 세상이 바뀐 걸 절감한다. 사회는 갑을과 상하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직장에서는 직함보다 이름 부르기를 권한다. 대기업의 회장마저 ‘○○님’, ‘○○형’으로 불리는 시대 아닌가. 교수와 학생도 역할은 다르지만,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대등한 인격체로 봐야 하는 시대라고 이해한다. 내 생각이 해묵은 권위 의식이나 고정관념에 젖은 건 아닌지 수시로 돌아본다.



2. 질문은 없어도 출석과 성적은 칼같이 챙긴다


요즘 수업 시간엔 질문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다. 볼 일이 있으면 수업이 끝난 후 개별적으로 조용히 물어본다. 수업 사이트의 쪽지나 스마트폰의 문자도 활용한다. 모두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 크다. 직접 대화를 나누고 전화하는 것보다, 메신저와 문자, 메일 사용이 흔하다.


출석은 예민한 문제가 됐다. 일정 시간 결석 시 아예 F로 처리하는 학사 규정이 있어서다. 결석하게 되는 경우 사유서나 소명자료를 제출해 출석 처리되도록 적극 대응한다. 수업 시간에 출석을 너무 일찍 체크해도 곤란하다. 중간에 몰래 자리를 뜬 학생을 그냥 두면, 끝까지 출석한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편법이나 반칙을 못 참는 시대, ‘공정’이 중요한 화두가 된 MZ세대의 풍속도가 아닐까 싶다.


성적은 당연히 최고 관심사, 자신의 예상과 다르면 성적 정정 기간에 이의 제기하는 학생들이 나온다. 기분이 좋진 않지만, 공정한 처리와 책임 있는 답변은 필수다.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상책이다. 성적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자기가 공부한 게 별로라면 역시 쿨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수업 과정에서 혹시나 편중과 편애가 없도록, 매사 균형감 있게 응대할 필요가 있다.



3. 청춘은 하나씩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


Me-마케팅 발표가 끝나고 작성한 질문지를 받았다. 펜을 빌려 쓰느라 빈칸이 많은 답안지도 있지만, 이번에도 학생들의 반응에 놀란다. 그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많이 답한 건 무엇일까. 성년이 되면서 하나씩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이 빛나는 순간이다. 이 시대 청춘의 설레는 감정과 삶의 소소한 기쁨이 반짝이기 때문이다. 여행에 관한 행복한 기억도 많았고, 부모님과 소중한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1) 성장하면서 느끼는 삶의 기쁨

- 힘든 입시 생활이 끝났다. 내가 원하는 전공, 대학 추가모집에 합격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 처음으로 술을 마신 날, 알바로 처음 돈을 번 날을 잊을 수 없다. 갖고 싶은 옷을 내 돈으로 샀다.

- 처음 자격증을 땄을 때 내가 대견하고 뿌듯했다.     


2) 즐거운 여행의 기억

- 가족과 함께한 여행, 친구들과 만든 추억의 시간이 정말 좋았다.

- 학교 프로젝트 당선, 내 힘으로 학우들과 여행한 시간이 꿈만 같다.


3)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 최고로 고맙고 소중한 사람은 부모님, 내게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집에 온 날, 내 말 따라 행동한 날을 잊을 수 없다.


4) 자신에 대한 긍지, 자존감이 높은 학생도 눈길을 끈다

- 나는 똑똑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 나는 여친과 오래 연애했는데, 친절하다는 말을 듣는 게 기분 좋다.

- 나는 평생(?)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내 세상을 살아보겠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


대한민국 20대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힘든 세대가 아닌가 싶다. 삶 자체에 대한 불안이나 방황과 함께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도 깊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 날마다 일상은 흔들린다. 그들의 삶은 나 같은 기성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시대 상황과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들의 눈과 방식으로 소통하는 일이다. 이해의 눈높이를 내가 아니라 상대의 언어와 사고의 틀에 두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과 피드백에 따라 내 강의 스타일도 날로 바뀌는 중이다. 강의자료에서 복잡한 텍스트는 줄이고 비주얼 요소를 한층 강화한다. K컬처 강의에 걸맞게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이나 최신 뉴스를 자주 소개한다. 강의 만족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건 덤이다. 나 또한 젊어지는 듯한 활력과 에너지를 느낀다. 나이 들어서도 일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모든 소통의 기본은 상대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K컬처 또한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세계인의 시선에 어필한 것이다. K컬처가 지속하려면 그런 방향이 잘 유지돼야 함은 물론이다. Z세대인 2000년대생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 스펙 쌓기도, 취업도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시대를 사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수업 시간을 함께 한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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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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