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피서법

국수 한 그릇 비우면 세상만사 느긋해진다

by 김성일

지난 토요일엔

서대문에 있는 단골 국숫집에 갔다.


한낮의 더위가 찜통처럼 달아오를 무렵

안에 들어서니 에어컨이 빵빵하다.

별안간 북극에라도 온 듯, 으스스하다.


이마에 흐르던 땀이 식으며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발끝까지 내려간다.

나는 부추국수, 아내는 잔치국수

국수는 우리의 최애 메뉴다.

금방 뽑은 생면이 후루룩,

입안에서 쫄깃하게 감칠맛으로 감겨든다.

부추의 서걱이듯 씹히는 맛도 좋다.

말랑말랑한 국수와 꽤나 잘 어울린다.


아주 적당히, 맛있게 매운맛이

혀를 잠깐 얼큰하게 자극하다가 목구멍 속으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매운 걸 썩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이 정도면 딱, 맞춤이다.


천천히,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으로

온면의 기운이 감싸듯이 퍼져간다.

차가운 에어컨 공기로 싸~해진 살갗을 천천히 달랜다.

잔치국수는,

정말 무난한 맛이에요.

입안에서 뭔가 튀는, 다른 느낌이 전혀 없고

여기 쾌적한 온도에 딱 스며드는 그런 맛요.


아내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담백한 육수와 깔끔한 맛,

기다리던 맛을 만났다는 표정이다.



서대문에 있는 두 국수집의 부추국수. 본가국수는 풍성하고 청년국수는 조금 듬직한 맛이다


일요일에도

내친김에 계속 국수로 달렸다.

이번엔 집에서 만들어 먹는 비빔국수.


오이채, 사과채, 파프리카도 썰고

여린 상추도 곁들인다.

달걀도 먹음직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참, 열무김치가 빠지면 섭섭하겠다.

상큼한 국물도 조금 넣으면 좋고.

마지막으로 단백질 보충의 특명으로

멀리 물 건너온 골뱅이 부대를 투입한다.

한국의 주당들(?)을 위해 영국의 어부들이 바다에 나선다, 던데

바로 그 골뱅이다.*


비빔국수는 사뭇 경쾌하다.

천천히 섞어서 비비고 나면

가늘고 매끈한 국수 가락이 혀끝에 감기며 사르르 미끄러진다.

가벼운 식감에 골뱅이의 묵직한 맛이

입안의 균형을 잡는다.

기특한 맛이다.

잠깐,

숨이 멈춘다.

행복한 기운이 몸에 퍼지는 중이다.


한여름 국수 한 그릇 비우다 보면

포만감은 적당하고 기분은 살짝 떠오르듯 유쾌해진다.

일순 세상사에 여유만만, 느긋해진다.


문득 어릴 적,

고향 집 대청마루 생각난다.

짙푸른 앞산 대나무 숲에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날,


깜빡 더위를 잊는다.





* 영국 어부와 골뱅이

한국의 유별난 골뱅이 사랑으로 동해안에서 나는 토종 골뱅이의 씨가 말라가자, 연간 5천 톤의 골뱅이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입된다고 한다. 골뱅이 통조림 원료의 90%에 이르는 양이다. 북해의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골뱅이는 크기도 동해산보다 1.5배 큰 데다 맛도 쫄깃해서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날렵하고 경쾌한 아내표 비빔국수, 얼른 시원하게 한 그릇 비우고 싶어진다.






* 표지 사진은 고향 집 앞의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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