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절한 사람인가

by 김성일

여름 나기가 만만치 않다.

기록적인 무더위에다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더해졌다.

잠깐 외출했다가,

별안간 퍼붓듯 내리는 소나기에 낭패를 볼 수 있다.


며칠 전 출근길이 그랬다.

사무실까지 30분 정도 거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웬걸, 버스에서 내릴 때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리자마자 최단 거리의 편의점으로 질주했다.

카운터를 지키는 중년의 직원은

약간 느긋한 듯, 여유가 있었다.

내가 고른 5천 원짜리 우산을 계산하더니

비닐 커버와 상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두둥했다.

아, 이런 게 서비스 마인드란 거구나.

직원이 건넨 우산은 편의점을 나서면서 바로 쓰기 편했다.

우리 동네의 단골 세탁소는 직원이 자주 바뀐다.

이전 60대 아저씨는 손님이 가도

그리 반가운 기색이 아니다.

마지못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이디로 쓰는 전화번호 네 자리는

대개 두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다.


경기장의 희한한 축구선수가 생각난다.

“왜 자꾸 나한테 볼을 패스하는데?”

얼마 뒤 새로 온 직원은 중년 여성이었다.

친절하긴 한데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한 번은 찾아온 옷을 며칠 뒤 입으려고 보니

낯선 게 한 벌 더 들어 있다.

분명히 확인하고 내줬는데도 말이다.

전화를 해서 "옷이 하나 더 왔네요." 해도

크게 놀라거나 미안한 기색이 없다.

종종 있는(?) 일인 듯이 말이다.

“좀 가져다주시면 안 될까요?”

마지막에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겨우 덧붙인다.

그들을 보면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센스나 친절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라도 확실하고 야무지게 처리해야겠지.


근데 나는 얼마나 친절할까.


예전에 ‘친절남, 진실남’이 되자, 고 다짐하곤 했다.

돌아보면 내가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하기보다는

눈에 잘 안 띄는 데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기 일쑤였다.

그렇게 적당히 따라간 적이 많았다.

친절을 베풀기보단

누군가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무례함에 방어적으로 대했다.


하루를 즐겁고 기분 좋게 살려면

‘솔선수범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솔선수범이라면 왠지 거창하게 들리지만

알고 보면 ‘먼저 뭔가를 하라’는 거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미소 짓고,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된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거 같아서.

늦게라도 철이 들어가는 걸까.


요즘엔 출근하면 먼저 인사한다.

카페에서도 주문할 때는 안녕하세요,

텀블러를 받고는 감사합니다, 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누군가와 SNS 대화를 할 때는

느낌표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더한다.

이모티콘을 쓰거나 약간 호들갑스럽게(?)

고마움이나 반가움을 표하면 금상첨화다.


그중에서도 아내에게는 2배, 3배로 파워업한다.

매사 밀착마크가 기본이고

별안간 날리는 지적사항에도 원만한 반응은 필수다.


친절함은 가벼워지는 것이다.

나를 한 끗 내리고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근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겐

아직도 선뜻 안녕하세요, 가 잘 안 나온다.

아파트 위, 아래 집에 살면서도 말이다.

훨씬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아내가 부럽다.


낯선 사람들과 연락할 땐

여전히 경계심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래도 난

가볍고 말랑한 남자를 꿈꾸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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