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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16. 2022

자기 말고 옆 사람을 소개하라고요?

20년쯤 전, 직장 생활 10년 차인 30대 후반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설레기보다는 여러모로 불안했다. 늦은 나이에 현지 사정에는 낯선 데다 영어도 버벅대는 실정이었다. ‘새파란 청춘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 크게 다가왔다. 첫 시간에 교실에서 만난 20여 명의 학생은 세계 각지 출신의 다국적 연합군이 따로 없었다. 남학생은 딱 3명, 압도적인 여초현상은 붙임성이 별로인 나를 더 주눅 들게 했다. 교수는 대뜸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근데 자신이 아닌 옆 사람을 소개하라는 것. 두 사람이 짝이 돼 서로 대화를 나눈 후 상대를 소개하라는 말이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내가 아닌 옆 사람을 소개하는 건 나를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를 알아가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웃과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파트너는 덴마크에서 온 피터였다. 전형적인 북구형 미남이었다. 웃는 인상도 좋고 서양인 특유의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날을 계기로 피터는 내 영국 생활 중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펍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몇 명이 의기투합해 여행도 다녀왔다. 내 영어도 조금씩 늘어갔다. 이런저런 인연인지 피터는 한국 여학생과도 사귀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자기 소개할 일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짧은 순간에 나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채용 심사처럼 이력서나 자소서를 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상의 만남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늘 원하는 대로 교류가 이뤄지진 않는다. 사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생각이 강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조금씩 고민하다 보면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국에서 경험했던 옆 사람 소개법을 써먹는다. 2인 1조로 소개하니 친근감이 배가되고 팀워크도 좋아진다. 최근 들어선 소통과 마케팅 관점의 소개법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적인 자기소개를 넘어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분석해보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라는 상품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따져보고 그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자신만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케팅의 3가지 핵심 요소는 상품, 고객, 그리고 유통이다. ‘나와 너, 그리고 나와 너를 연결하는 방법과 통로’라는 3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많은 이 이런 원리에서 이뤄진다.      


첫 시간부터 내가 내놓은 과제를 받아 든 학생들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다. 막상 발표를 하고 난 뒤 그들의 반응은 꽤 흡족해 보인다(혹시 나만의 생각일까).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던 데 만족하는 것 같다. 자신을 '정의하고 재정의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자기소개의 출발이다. 주제를 파악해야 세상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건 고객의 관점, 다시 말해 객관적인 제삼자의 위치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 ‘메타인지’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와 고객이 만나는 연결과 소통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하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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