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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Aug 11. 2021

이름도 인연이니까

이름하여 이름

"나 개명하려고! 어떤 이름이 나아?"


 친구 녀석이 흔해 빠진 자기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새 이름 후보군은 하늘, 서아, 단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니크하고 예뻐 보이는 이름을 원했다.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혹은 바꾸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 이름은 어떤지 생각하곤 한다.


 내 이름은 심광식. 빛 광(光)에 심을 식(植)이다. 종종 미칠 광(狂)에 먹을 식(食)이 아니냐고 장난치는 녀석들도 있지만 다행히 빛을 심으라는 의미다. (간혹 미친 듯이 먹을 때가 있긴 하다.)


 얼마 되지 않지만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몇 개의 후보군이 있었다. 천식이는 엄마가 다녔던 회사 남직원 이름이었는데 놀림을 많이 받았다며 패스. 현식은 옛날 이름 같다며 패스. 결국 광식이가 되었다.


 딱히 마음에 든다고 할 순 없지만 정겨운 느낌은 있었다. 담벼락을 마주한 옆집 아저씨의 이름이 김광식이었고 스무 살 대차게 까였던 짝사랑과 자주 가던 고깃집이 광식이 가게, 사장님은 박광식이었다. 초록창에 심광식을 검색하면 독립운동가가 나오는 걸 보니 이만하면 부끄러운 이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영화가 나와서 별로였던 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부터 친구들까지 '네 동생 이름이 혹시 광태가 아니냐'라고 물었고 (지금도 종종 아재 개그를 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할 수 있다면 내 동생을 광태로 만들어버린 혹은 세상의 모든 광태의 형을 광식이로 만들어버린 영화감독에게 따지고 싶었다.


 *성인이 된 광식이는 뒤늦게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보고 찌질한 광식이의 모습에 폭풍 공감했다.


 28년째 함께 살아오니 광식이라는 이름 안에 나의 얼굴, 말투, 성격, 행동 모든 것들이 담겼다. 사람들은 '광식'이라는 이름을 통해 나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이고 친구이고 착한 남자.. 때때로 나쁜... 아니 나쁜 새끼였고 미치도록 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혹시 광식이라는 이름으로 나쁜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름이  마음에 든다. 광식이만큼 나를 표현할  있는 단어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준 덕에 '식이타임'이라는 필명도 얻었다. 빛을 심는 거창한 일은 어렵지만 누군가에게 어두운 마음은 심지 말자고 생각한다.


 만약 내 이름이 천식이나 현식이였더라도 똑같이 생각했을까? 아무튼 개명을 원한다면 그동안 자신을 이르느라 애쓴 이름에게 충분히 인사해주면 좋을 것 같다. 혹은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살겠다면 미우나 고우나 자기 이름을 좀 더 사랑해줘도 될 것 같다.


 이름도 나름 인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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