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좋을 때
"쉬는데 미안해요."
업무상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큰 부서라 그렇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 궁금해하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휴식이 필요할 뿐.
고대했던 5일간의 여름휴가였다. 여지없이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이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 휴대폰의 비행기 모드가 눈에 들어왔다. 과감하게 버튼을 누르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했다. 비행기만큼 빠른 속도로 불편한 소음을 덮을 수 있었다.
'이거 만든 사람 완전 천잰데?'
불편함이 비행기 모드의 찐 기능을 깨우쳤다.
중요한 업무가 마무리되면 완성본을 가지고 차례차례 서명을 받으러 다녀야 했다. 쿨하게 "고생했다!"라며 사인해주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깐깐한 사람도 여럿 있다.
"여기 글씨 간격이 다르잖아, 통일을 하라고 통일."
(우리나라가 통일했으면 군대에 안 왔을 텐데.)
"숫자 틀린 거 아니지? 잘 보라고. 틀렸네 다시 검토해"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찾아내지?)
"사람들 인생이 달렸어. 자기 일처럼 하라고 자기 일처럼!"
(네 일이다.. 네 일이다.. 네 일이다..)
문서의 통일성이 떨어져서, 숫자가 틀려서 몇 번씩이나 퇴짜를 맞고 나서야 겨우 기한안에 결과물을 제출했다.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때면 나의 자신감은 급격히 하락했고 비꼬는 듯한 그들의 잔소리를 듣고 나오는 날이면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시간이 흐르니 알게 됐다. 나를 성장시켜줬던 건 시원시원하게 서명을 해주던 사람들이 아닌 꼼꼼하게 확인하고 아픈 잔소리를 날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그들의 잔소리는 불편하지만 덕분에 부족했던 세심함을 기를 수 있었다. 내 심사물을 제출한다고 생각하니 보기 좋게 문서를 작업할 수도 있게 됐다. 깐깐한 그들에게 듣는 칭찬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영원히 있는 건 아니다.
반드시 자리를 떠나고 사람들과도 헤어진다.
심지어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다.
헤어지고 떠나면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이 된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어떤 불편한 사람과 불편한 일을 겪더라도 고마운 점을 찾아내고 싶다. 역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힘들다고 느껴지는 상황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기적을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남겨본다.
오히려 좋아!
오늘도 무한긍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