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함을 대하는 자세
어릴 땐 코피가 자주 났다. 코를 자주 파서 그런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비염을 앓고 있는 탓에 항상 콧속이 가려웠고 약한 혈관이 터져 코피를 달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코피를 흘리는 날이 머지 않아 한약을 지어오셨다. 한약은 어린 나에게 정말 쓰게 느껴졌다. 차마 할아버지의 마음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꼬박꼬박 전자렌인지에 30초 동안 데워 마셨다. 한약을 먹어서 코피가 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건강하게 자랐다. 단 것도 잘 먹고, 쓴 것도 잘 먹는다.
근 몇 년은 한약보다 쓰디쓴 사건들이 가득했다. 여느 일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때면 더 큰일이 다가왔다. 역시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씁쓸했던 사건들을 추적해보니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가 되어 글로 탄생하고 있다. 뭐든 마지막에 이긴 놈이 승자라고, 쓴 놈들이었지만 그들을 써내고 있으니 내가 이겼다고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요 며칠은 몰랐던 사실을 접했고 착각하고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알았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방 안에 홀로 누워 쓰라린 마음을 어떻게 감싸야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괜찮아'와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의 무한반복이다.
별 다른 방법이 없어 한약 먹듯 일단 삼켜 본다. 마음에만 담고 있기 싫어 글로 슬쩍 끄적였다. 달디단 일들만큼 쓰디쓴 일들도 결국은 필요한 거라고 다독이며. 오늘의 씁쓸함이 내일의 달콤함이 되길 바라며.
쓰니까 좀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