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라는 사치
서점에 들르곤 한다. 나의 알 수 없는 욕망을 해결해줄 공간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서점만 한 곳이 없었다. 커피를 파는 독립서점 몇 군데를 기분 따라 오가는데 두서없이 책을 펼치며 글감을 찾기도 하고 푹 빠져드는 책이 있으면 집으로 모셔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책은 나의 문해력보다는 연기력을 키워줬다.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동화전집을 구입해 주셨지만 단 한 권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책 읽었어?"라는 말에 "당연히 읽었지!"라며 흔들림 없는 눈동자와 당당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날이 쌓여갔다.
아침 독서 시간엔 책꽂이 앞에서 친구들과 키득키득 대며 시간을 죽였고 선생님의 잔소리가 들리면 가장 글이 적게 적힌 책을 가져와 읽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틈만 나면 독서를 하고 계셨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어릴 때 하도 안 읽어서 이제야 밀린 책을 읽고 있어."라고 답했다. 당시엔 '나도 혹시 그런 날이 올까?'라며 막연히 상상할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책과 친해진 건 훈련소 시절이었다. 그곳엔 도통 놀거리가 없었는데 기껏해야 매달 나오는 공군 잡지를 보며 키득대는 것이 전부였다. 따분해 죽겠다고 푸념하던 어느 날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진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지나가는 조교들의 눈을 피해 열심히 읽었다.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마음이 찡해지는 이야기에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처음으로 책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시간이 나면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는다. 독서를 모르던 과거에 대한 반성은 아니다. 먹먹한 순간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가슴 뛰는 무언가를 찾고 싶은 욕망도 있다.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보기도 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기도 한다. 남들은 모르는 좋은 시를 발견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책을 좋아하고 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보내는 법도 터득했다.
오늘도 여유가 생긴 김에 서점에 들렀다. 이곳에선 조금 사치를 부려도 괜찮다. 책 한 권을 사면 며칠은 족히 즐길 수 있으니까. 책 사이사이 연필을 끄적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본다. 집에 돌아갈 때면 서점에서 받았던 위로를 조금이나마 베풀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꿈과 글감이 될 몇 권의 책, '나중에 책방을 열자는 아내의 말을 어떻게 실현할까?'라는 고민을 안고 나온다.
오늘도 사치를 좀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