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아기와 산 오르기
어린 시절 아빠와 자주 산을 올랐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용진산'이라는 한적한 산이었다.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오르던 날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못 가겠다며 울며 떼쓰던 순간도 있었다.
어떤 날은 태풍이 지나가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등산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냥 적당히 올라가다가 돌아갈 법도 한데, 아빠는 정상까지 가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올랐다.
아빠는 힘든 순간에도 아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으며 지금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체력이 좋은 건 몇 번이고 등산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빠도 나도 인생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산행을 통해 터득했다.
그런 아빠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아빠가 되고 종종 산을 오른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을 아기띠에 매고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산을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아들은 산행을 하며 풍경을 둘러보기도 하고 "엄마, 아빠"하며 흥얼거리기도 한다.
솔직히 산행을 시작할 때마다 산에 오자고 한 것을 후회했다. 초반에 산을 오르는 게 정말 힘겹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내에게 ’이런 거쯤이야 별거 아니라며 떵떵거리고 왔으니 올라야지'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등산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빠와 등산하던 추억이 생각난다. 김밥을 먹다가 내 입에서 나온 밥알이 물병에 동동 떠다닌 기억, 내려와서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던 기억, 홀로 산을 오를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아빠에게 업혀있던 묵직한 동생.
추억을 더듬다 보면 어느새 목표점에 도착해 있다. 아내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새로운 추억이 쌓인다. 비록 우리의 다리는 후들거릴지언정 입을 모아 "오길 잘했다."며 내려온다.
한 번의 산행처럼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삶도 닮아갔으면 한다. 비록 시작은 매콤할지라도 고비를 넘고 넘어 마지막엔 상쾌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일들의 반복. 여전히 등산을 가는 건 두렵지만, 우리는 또 한 번의 산행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