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이타임 Mar 19. 2024

이중인격 아빠

나의 기원

 태평이가 태어나고부터 간절히 바라던 것이 있다. 하루빨리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내는 날이 오는 것이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도 말이다. 태평이를 키우는 기쁨도 있지만 그만큼 삶의 주도권이 녀석에게 넘어갔다는 상실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태평이 스무 살만 되면 바로 독립시킬 거야."라며 아내에게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언제든 아들을 세상으로 내보낼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든지 스스로 해내는 아들이 되길 바라며 선택한 것 중 하나는 분리수면이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우는 탓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도 있던데 우리 부부는 일 년이 넘도록 태평이의 통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완벽한 분리수면을 위해 태평이의 방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조용히 잠자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캠도 두었다. 이제 태평이를 무사히 재우고 방을 빠져나오는 일만 남았다.


 분리수면의 첫날, 성공적으로 태평이를 재우고 침실로 빠져나왔다. 이게 얼마 만에 되찾은 우리 부부의 침실인가. 아내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랜만에 조명도 마음대로 켜고 실컷 이야기를 하고 볼륨을 높여 핸드폰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편하게 잠을 잘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 기쁨이 얼마나 갔을까? 새벽마다 잠에서 깬 태평이는 집이 떠나가도록 울어댔고 거실에 데리고 나와야 울음을 그치고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아들이 울지 않았던 날도 마치 울고 있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따로 자는 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깨달았다. 분리되고 있던 건 아내와 나였음을.


 분리수면의 꿈을 접은 우리 부부는 거실에 넓게 이부자리를 폈다. '굳이 거실을 자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거실에서 함께 자면서부터 태평이는 우는 시간도 줄고 잠도 푹 잘 잤다. 태평이는 내심 엄마, 아빠와 함께 자고 싶었나 보다. (아들, 미안.)  


 함께 잠이 들며 난데없이 날아오는 발차기를 맞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지만 태평이가 그만큼 자랐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머리가 가장 무거운 녀석에게 거뜬히 한쪽 팔을 내어준다. 태평이는 내 체취를, 나는 태평이의 머리냄새를 맡는다. 희미하게 아기냄새가 난다. 아기냄새가 사라질 때 까지 숨을 들이켠다. 그 순간만큼은 태평이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던 내가 조금은 천천히 컸으면 한다고 기원하며 잠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랑 산을 오르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