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성숙한 당신
엄마에게 종종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오늘 가게에 태양(가명)이 왔다 갔어!"
내 친구 태양이. 요즘은 나보다 우리 엄마 아빠랑 더 친한 것 같다. 녀석은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이다.
태양이와 첫 만남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화순에서 전학을 왔다. 친해지는 데 별다른 이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같이 자전거도 타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했다. 목이 마를 때면 녀석의 집에 들렀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서 눈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선 종종 있는 풍경이었다. 굳이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언젠가 녀석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없었던 사람이었어."
스무 살이 되어 나는 대학을 갔고 녀석은 일을 시작했다. 첫 월급을 탔다고 고기를 사줬다. 그땐 녀석의 땀이 담긴 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철없이 얻어먹기만 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고 태양이는 일을 하다 보니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었다. 가끔씩 내게 고민을 털어놨다.
"알코올 중독인 아빠가 미워서 집을 나가고 싶어."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독립을 했다. 가끔씩 자취방에 놀러 가서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술도 한잔씩 했다. 독립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을 녀석에게 힘주어 약속했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면 언제든지 찾아갈게."
태양이의 소중한 누나 둘이 차례로 시집을 갔다. 녀석에겐 살아가는 버팀목이었을 거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 거리지만 결혼식에 함께 갔다. 결혼식을 가는 버스 안, 아빠에게 원망 섞인 말들을 던지는 녀석을 봤다. 아픈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뒤 태양이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내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넌 부모님한테 잘해~ 난 잘 좀 할걸 후회되더라."
무슨 일인지 녀석에게 갑자기 카톡이 온다.
"짜식아 나이가 몇 갠데 밥은 혼자 챙겨 먹어야지."
얼굴이 벌게졌다. 엄마는 밥도 혼자 안 챙겨 먹는 내 모습을 태양이에게 일러바쳤다. 외로웠던 만큼 녀석은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팍팍한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서 쉼 없이 일했다. 홀로 아버지를 챙겨야 하는 아들이기도 했다.
최근에야 몇 개월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 처음으로 이렇게 쉬어보는데, 뭔가 불안하더라."
"뭐 어때! 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잖아!"
지금은 새벽같이 일어나 누군가의 삶을 위해 운전을 하고 있다. 늘 봐왔던 대로 성실하다. 녀석에겐 낯간지러워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동네 친구들과 모이는 날이면 자랑스럽게 외친다. 방황하고 엇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 녀석 참 잘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