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봄, 부글거리는 현대사
이른 저녁을 먹고, 올해 두 번째 천만영화가 될 것이라는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물으면 늘 국사와 한국지리 중에서 어떤 과목을 대답할지 고민하던 학생이었다.
이 시기에 국사 공부 범위는 인류가 돌이라는 도구를 처음 사용한 구석기시대부터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주기적인 침략을 받았던 조선시대까지였다. 500년이나 이어졌던 왕조는 무능하고 나약해져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끝이 났고 이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근현대사로 분류되었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의 시기였던 근대사는 그나마 자세하고 촘촘하게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한국전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로 분류하는 시기는 자세하게 공부해 본 기억이 없다. 국사 교과서 뒷부분에 아주 소량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당시만에도 현대사 사건들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살아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현대사 사건들을 그저 한 줄의 문장들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무채색을 띄던 역사 속 한 장면들에 색을 입혀준 사람이 있다.
바로 '최태성'선생님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수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EBS에서 무료로 양질의 국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유명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선생님의 역사이야기를 좋아한다.
머리를 꽝 하고 때리는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강의였다. 그 문장은 당시 주입식 교육에 맞춰 공부만 하던, 수동적인 삶을 사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문장 하나로 나는 그의 가르침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인생에 어떤 순간이 닥치면 입 밖으로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읊는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역사와 역사교육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이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패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미래로 발전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발전 과정의 핵심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서울의봄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창작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그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이 교과서 등의 교육 통해 사건을 간접경험하고 그 배움의 의미를 되새기면 좋겠지만 이 때는 너무 어리다.
그래서 어느 정도 머리가 깨어난 시점에서 교육을 받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기회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시간들은 과거의 잘못된 상황에 대해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에 이런 일이 없는지 경계하게 된다.
나아가 앞으로 과거과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학생 때, 국사 공부를 하면서 아쉬운 점 하나가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과거의 일이 시대를 거듭하며 반복되는 것 같았고, 이게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굴레이고 한계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좌절감이 들게 하는 과목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이런 역사라도 반복될 수 있었던 점 때문이었다.
늘 역사 속 누군가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신념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설사 그 당시에 본인이 직접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이들이 그 신념을 이어 나갔다.
'봄'이라는 계절은 추운 겨울을 지나 만물이 깨어나고 피어나는 따뜻하고 자비로운 시기이다.
아쉽게도 1980년, 서울에는 봄이 찾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봄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모두 알 수 있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가는 장면들 하나하나에 애처롭고 슬펐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집에 가는 길에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마음에 이태신의 실존 인물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에 대해 찾아보며 나에게 스스로 물어본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