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너가 진짜 좋아할 것 같아"
친구의 권유가 있고 난 몇 주 뒤 '최강야구'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특정 구단 팬은 아니지만 야구가 재밌고 좋아서 여러 구단의 KBO경기를 챙겨보는 편이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경기를 보고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쯤 되었나 보다.
처음 최강야구 프로그램이 생겼을 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야구로 어떻게 예능을 한다는 거지?
어떤 프로그램인지 제대로 챙겨보지도 않았고, SNS에 스쳐 지나가는 영상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늦은 봄, 친구랑 카톡을 하다가 최강야구 이야기가 나왔다.
"안 본다고? 너가? 왜?!"
야구를 좋아하는 내가 최강야구를 안 본다는 이야기에 친구가 화들짝 놀랐다.
꼭 보라고 몇 번을 말하는 친구에게
"알았엌ㅋㅋ 넷플릭스에 있으니 한 번 봐볼게"
라고 말하고도 한 동안 별 생각이 없었다.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 헬스장에서 볼 게 없어서 어쩌다 본방사수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최강야구는 TV가 없는 내가 본방사수를 노력하며 꼭 챙겨보는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번주 방송은 제발 안 본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일단 최강야구 프로그램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PD가 단장을 겸해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을 모아 '최강 몬스터즈'라는 팀을 꾸렸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고교, 대학, 사회인 등 아마추어 야구팀과 경기를 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프로와 아마추어 실력차를 맞추기 위해서(?)
승률 7할을 유지하지 못하면 '프로그램 폐지'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 조건 때문에! 최강야구는 분명 예능 프로그램인데 시청자들이 웃으면서 야구를 즐길 수가 없다.
몬스터즈에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대타자, 대투수들이 있다.
이 선수들이 아무리 은퇴를 하고 나이를 먹었어도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7할 승률을 유지하기 어려울까?
쉽지 않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젊어서 체력적으로 상당한 우위에 있지만 몬스터즈 선수들에게는 경험과 실력이 있어 한참 유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야구는 잔인하게도 마음대로,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7할 승률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어른 주먹보다 약간 크고 묵직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고, 잡으면 되는 심플한 운동종목이다.
하지만 직접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는 나 혼자 잘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모든 타자를 1루조차 밟지 못하게 하는 투수더라도 우리 팀이 최소 1점을 내주지 않으면 경기는 비기는 것이다.
내가 매 타석 홈런을 치는 타자더라도 상대팀이 우리 팀보다 1점을 더 내는 플레이를 한다면 경기는 진다.
이번주 방송을 보면서 '야구 참 어렵다'라는 생각을 했고
방송에서도 '야구는 참 잔인하다'라는 자막이 나와 크게 공감했다.
시즌2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몬스터즈에게는 총 4번의 경기가 남았다.
지난주부터 69회 70회, 71회, 72회 총 4번의 경기 중 2번을 이겨야 내년에 시즌3가 진행된다.
69,70회는 강릉영동대학교와 2연전을 하는데
지난주 방송 69회는 처절하게 패배했다.
그래서 이번 주 방송은 반드시 이겨야 남은 2경기를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뛸 수 있다.
그렇기에 선수들 모두 다부진 각오로 경기를 하는데 매 이닝 계속 희비가 엇갈렸다.
경기를 보는 내내 눈물도 나고, 손에 땀도 나고, 입에서 욕도 나왔다.
본방으로 봤으면 스트레스가 더 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선수들의 간절한 바람과 노력 끝에도 결국 승리는 강릉영동대에게 갔다.
좌절하는 몬스터즈 선수들의 모습과
승리를 자축하는 강릉영동대 선수들의 환호성 오디오가 겹쳐서 나왔다.
이제 다음 경기에서 지면 프로그램은 폐지된다.
야구 참 마음대로 안된다.
이런 험난한 내용의 야구경기를 보면 이상하게 나는 자꾸 내 인생과 겹쳐서 보게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마음으로 노력을 하지만 내 뜻대로 전혀 안 되는 때가 있다.
화가 나서 죽겠는데 어떻게 안 된다. 결과를 바꿀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쏙쏙 골라서 할 수는 없다.
삶은 야구경기처럼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은 졌지만 몬스터즈에게는 아직 두 경기가 남아있고
제발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이겨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년에도 월요일마다 최강야구를 보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