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는데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급한 일이 있어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많이 타지 않더라도 택시기사님들의 유형이 둘로 나뉘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말씀이 많은 쪽과 없는 쪽.
말을 안 하시는 분들은 정말 극단적으로 운전만 하신다. 이런 유형의 분들은 길도 물어보지 않는다. 너무 피곤하거나 택시 안에서 할 일이 있는 날은 이런 기사님의 택시를 타면 정말 좋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이 부류의 기사님은 매우 희소하다. 오죽하면 할 일이 잔뜩 있는 날 택시를 잡고 말씀이 없는 기사님을 만났음을 알게 되었을 때, 큰 안도감이 든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타게 된 택시 기사님은 말씀이 아주 많으신 편이셨다. 어플로 잡은 택시여서 기사님은 이미 행선지를 알고 계셨고, 내가 앉자마자 바로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아!' 하는 탄식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지만 이 상황에서 책을 보다가 멀미할 바에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빠른 판단하에 책을 꺼내지 않고 적당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어느덧 이야기는 클라이맥스까지 치솟아 꽤 오래되었다는 기사님의 강연 이야기까지 흘렀다.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과 공부에 대해 해 주셨다는 말씀을 내게도 해주신다며 목을 축이셨다. 그리고는 어느 야당 총수 못지않은 웅변 목소리로 삶의 교훈을 전달해주셨다.
택시 안에서 엄청난 이야기꾼을 만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웅변에 박수를 치지 않았다는 핀잔과 함께 다음 이야기는 기사님의 여행기였다.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로 '손님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라고 선언하며 여행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 보따리에서는 기사님이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말고 무더위가 아주 한창일 때, 부모님과 함께 꼭 가면 좋은 곳이 있다고 운을 떼셨다. 요즘같이 폭염이 이는 무더위가 한창인 때는 젊은 사람들끼리 가도 안 힘들기가 힘든데, 부모님을 모시고 어디를 가라고 하는 걸까. 계곡일까? 바다일까? 하고 머리를 굴리는 차에 나온 대답은 나에게는 정말 뜻밖의 장소였다.
바로 홋카이도였다.
코로나 때문에 나도 모르게 국내 여행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외 여행지를 듣게 되니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감칠맛이 돌았다. 게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라는 말씀에 지난해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아빠의 환갑이 생각났다.
강원도 강릉의 시골 출신이라는 기사님이 자신이 어릴 적에나 보던 맑은 하늘이 홋카이도에 있다고 하셨다.
여름 홋카이도의 파란 하늘과 진한 라벤더 밭이 그려졌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떠올랐다. 4년 전 쯤인가 한 여름 동네 치킨집에서 엄마랑 아빠와 함께 마셨던 생맥주의 쌉쌀한 맛이 입에 돌았다. 이번 주에 마침 아빠의 생신이 돌아온다. 코로나가 끝나면 부모님을 모시고 홋카이도에 가고 싶어졌다.
괜히 집에 도착해서 옷장에 박혀있는 여행가방을 만지작 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