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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4 집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by 식물리에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은 우리에게 두 번째 반려동물이 오고 난부터 시작된 기분이다.


우리에게는 두 마리에 동물가족이 있다. 지난 19년 가을, 여기로 이사를 막 마치고 집 정리가 아직도 한창일 때, 온몸에 이물을 잔뜩 묻히고 배를 곯은 아기 고양이를 줍게 되었다. 그렇게 고양이 무무를 만나게 되고 3년 차 되는 해인 올해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유독 귀도 예민하고 겁도 많은 무무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집에 오면 한걸음에 달려 나와 우리 다리에 온 몸을 비벼대고 집에 혼자 오래 있던 탓인지 자기와 내내 놀자고 칭얼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꽤 어리석은 되돌리고 싶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무무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가뜩이나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이라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을 싫어해서 고양이들끼리의 합사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지인이 고양이 합사를 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옆에서 똑똑히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나름의 정보검색을 통해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했다.


나도 예전부터 개를 키워보고 싶었던 터라 나쁜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같이 바람을 가르며 산책할 생각에 꽤 들떠있었다. 나는 작은 개는 싫어서 큰 개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고르자브종이라는 별명이 있는 토종 믹스견을 생각하게 되었고, 유기견 정보를 주는 어플인 포인핸드에서 남편이 한눈에 반해버린 갈색 강아지를 데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무무 동생인 강아지 루이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역경이 시작되었다.


강아지는 고양이와 정말 다른 생물이었다. 고양이는 정말 얌전하고 우아한 동물이라면 강아지는 말도 안 되게 흥분을 하고 날뛰는 동물이었다. 특히 우리 루이는 대형견이라 그런지 아주 무디고 거친 것 같다. 루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어딘가에 박는 소리가 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디 다쳤나 싶어 놀라서 달려가 본다. 그런데 아주 평온한 루이의 표정에 웃음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거친 나머지 겁쟁이인 무무와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우리에게 올 때 무무와 루이의 크기가 비슷했는데 어느 순간 루이는 벌써 무무의 3배 정도가 커져버렸다. 그러니 무무 입장에서 자신에게 놀자고 달려오는 루이가 너무 무서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얌전하게 노는 것도 아니고 돌진하고, 물고 잡아 뜯어 흔들며 노는 루이의 놀이 방식을 봐온 무무는 너무 루이가 싫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까워질 것 같으면 멀어지고를 반복하여 합사 5개월 차인 오늘도 둘은 멀리서만 서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둘의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하게 되었고, 평소 잘 누워있던 방바닥을 루이에게 내어 준 무무를 위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캣타워를 하나 더 구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무와 루이가 별도로 사용해야 하는 밥그릇과 물그릇이 곳곳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의 배변패드와 배변판도 거실과 방에 놓였다. 원래 가구가 별로 없던 우리 집에 무무와 루이의 짐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짐만 늘었다면 견딜만했을 텐데 집에 들어오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무무와 루이를 돌보는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다.

루이의 교육과 산책 등으로 남편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집에 오면 배변패드가 아닌 방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루이에 똥과 오줌을 닦으며 분노와 후회와 그럼에도 키워야 하는 책임감과 루이에 대한 애정이 섞여 복합적인 감정에 눈물이 터진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집이 더 이상 내가 알던 집이 아니다.


무무와 루이가 주는 행복감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지만 지친 나의 심신을 달랠 수 있는 내가 꿈꾸는 집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무척 힘들지만 방법이 없다. 루이가 어느 정도 성견이 되어 얌전해질 때쯤 나의 휴식이 가능하겠지 싶다. 아직은 3-4년은 내 집이 아닐 이 공간에서 남편과 털북숭이 동물가족을 끌어안고 잘 지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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