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영상 중에 너구리가 솜사탕을 씻어먹기 위해 물에 담갔는데 솜사탕은 없어지고 어리둥절한 너구리만 계속 두리번거리는 영상이 있다. 그래서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되는 영상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밖에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있던 얼음도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이렇게 어떤 것들이 짧은 시간 안에 사라져 버리면 그 순간에는 꽤 크게 허무하지만 그 감정 자체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 자체가 오래가는 것들이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쌓여 올려진 것들은 쉽게 사라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물건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다. 그래서 성격이 급하지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급하게 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칙을 몰랐을 때에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너무 공을 들이거나 좋아하는 속도를 높여 나 스스로가 금세 질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볍게 그것들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천천히 좋아하는 법을 알게 된 이후에는 너무 열을 내지 않는다. 아마도 모든 것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시작하는 것은 곧 사라짐을 향해가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성격이 급한 내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더 곁에 두고 싶어서 느긋함을 알게 된 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종종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 있지만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좋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이 있고 사라짐이 있을 테니까 내가 굳이 그 끝을 향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