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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국물에 밥 한 공기가 뚝딱 말아 후루룩 먹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게다가 여름이건 겨울이건 계절과 상관없이 한 그릇 다 먹고 난 뒤에 콧등에 맺힌 땀을 스윽 닦으면 그날로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한국인이라면 평생을 살면서 이 든든함을 한 번은 느껴볼 것이다. 느껴보지 못했다면 아마 인생의 쓴맛을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학생 때에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리고 흙과 돌을 이고 지는 일을 하면서 고된 하루를 보낸 저녁은 꼭 국밥이 생각이 난다.
국밥도 참 종류가 많다. 들어가는 주재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고 고춧가루를 넣는 얼큰한 국과 뽀얗거나 투명해서 깔끔하게 시원한 맑은 국이 있다. 다양한 종류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국밥은 순대국밥이다. 대학생 때도 회사생활을 할 때도 지금도 국밥 종류가 먹고 싶은 날은 순대국밥을 먹는다. 다행스럽게도 항상 각 시절마다 근처에 순대국밥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어서 언제나 맛있게 먹고 있다.
이렇게 약 10년을 순대국밥을 먹다 보니 나름대로 순대국밥을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평가요소는 국밥에 들어가는 순대이다. 일단 당면만 들어간 떡볶이 집에서 파는 순대가 있다면 점수가 깎인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국물의 진함, 국밥에 들어가는고기의 다양함과 양 등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그리고 순대국밥 외적인 요소이지만 전체 점수를 매기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도 있다. 바로 밥의 익힘 정도와 같이 나오는 김치와 양파, 고추의 상태이다.
내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은 내가 토종순대라고 부르는 순대가 2-3개 들어있고(너무 많아도 별로다) 기름기가 적고 덜 물렁물렁한 부위이 고기가 들어있는 국밥이다. 국물은 진득하니 진할수록 좋고 얼큰함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가게가 좋다. 어떤 날은 얼큰하게 어떤 날은 담백하게 먹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은 되도록 고슬고슬한 밥이 좋고 양파와 고추는 아삭 거리며 김치는 적당히 마늘이 섞여 있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수육 조금을 곁들일 수 있는 세트가 있으면 환상적이다.
지금 하는 일을 하기 전에는 몸을 쓰는 일은 고작 운동하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운동을 하고는 주로 순대국밥보다는 부대찌개를 더 많이 먹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형 화분들을 분갈이하거나 외부 현장에 식물을 식재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그렇게 순대국밥이 먹고 싶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스윽 넣고 뚝배기 바닥까지 싹싹 긁어 배에 다 집어넣으면 그날 힘들었던 일이 풀린다. 마치 개운하게 사우나를 하고 나온 느낌이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일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래도 순대국밥은 사계절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조만간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