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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Oct 06. 2024

중국집은 역시 짜장면이지.

(문해력 단련집 ; 어휘 공부)

짜장면 (또는) 자장면


친구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배가 고파졌다. 갑자기 중국집에서 먹는 달짝하고 까만 전통국수가 생각난다. 맛있을 것 같은 중국집은 지도앱으로 찾는 것이 아니다. 오래돼고 낡은 간판, 기름 때가 벗겨진 흔적이 페인트를 지워내 버린 것 같은 간판과 장식. 그렇게 있는 힘껏 맛집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맛있는 중국집은 지도 앱으로는 알 수 없다.




끼이익-


기름칠을 한 지 오래되어 삐걱 거리는 경첩 소리는 덤이다. 한 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는 오래된 옛날식 속빈 파이프로 만든 의자를 끌어 당겨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면, 커다란 글자로 제일 잘 보이는 메뉴는 세 개 혹은 네 개 정도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또는 볶음밥.


이때, 당신은 주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짬뽕은 논외다. 그것은 이 글에서 논하지 않는다.)


   짜장면을 달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자장면을 달라고 할 것인가.


예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둘 중 하나만이 표준어였고, 다른 하나는 비표준어였다. 그래서 예능을 포함한 방송의 자막에서는 하나만 사용되었었다. 다른 하나를 사용하는 표기법은 활자로 사용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러했던 사실을 예전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무엇을 달라고 할 것인가.

짜장면인가? 자장면인가?





자장면

「명사」

중국요리의 하나.

고기와 채소를 넣어 볶은 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다.

≒자장, 짜장, 짜장면.


자장면을 달라고 하는 당신은 원칙주의자이다. 원리원칙에 입각하여 불편한 것을 감내하고 잘못된 것에는 손을 뻗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바른 길이 있다고 믿는다. 허용된 것이 있고 금지된 것이 있다고 믿는다. 바른 것. 허용된 것. 그러한 것을 택하는 당신의 선택에는 타인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그래야 한다는 그 자신의 이유가 당신이 그렇게 선택하도록 한다.




짜장면

「명사」

중국요리의 하나.

고기와 채소를 넣어 볶은 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다.

=자장면.


짜장면을 달라고 하는 당신. 당신은 해도 괜찮은 것에 대해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해도 괜찮다고 하잖아. 그럼 해도 되는거 아니야? 안된다고 금지된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당신도 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면, 당신은 아무런 의사적 제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도를 하는 타입이다. 어떤가.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의 <표준어 규정>에 의하면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은 자장면 하나 뿐이다. 그러나 현재, 짜장면으로 표기하여도 교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 표준어로 하나가 있다는 것인가. 둘이 있다는 것인가. 자장면으로 표기해도, 짜장면을 표기해도 괜찮은 것. 그 이유는 2010년 12월 국립국어원의 심의회의 결과에 따라 짜장면의 사용을 허용하여, 복수표준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짜장면, 그리고 자장면. 지금은 둘 다 틀린 표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원칙은 자장면으로 할 것. 그리고 짜장면으로 하는 것도 허용한다. 이것이 짜장면의 사용의 허용이라는 표준어 원칙의 개정의 내용이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보자면 바른 표기는 자장면 뿐이고, 짜장면은 틀린 표기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비록 잘못된 표기이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기에, 이를 일괄적으로 비표준어로 한다면 국민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에, 국립국어원에서는 2010년 12월 심의회의 회의를 거쳐, 2011년 8월 짜장면을 포함한 39개의 단어를 새롭게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한 것에는 '짜장면', '택견', '품새' 등이 있다.


올바른 표기법은  '자장면', '태껸', '품세'의 형태다. 원래는 이것이 유일한 표준어로 사용되었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올바르지 않는 표기법을 잘못 사용하면서 언어생활을 뒤죽박죽으로 하여 왔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다수가 사용하는 잘못된 표기가 소수가 사용하는 올바른 표기를 뒤엎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존재목적으로 하는 국립국어원은 단순한 복수표준어로서 짜장면/자장면을 규정하지 않고, 원칙과 허용의 입장에서 양립하도록 규정하였다.



회사에서 상사가 갑자기 오늘은 중국집에 가자고 하면 잘 들어보라. 가게 주인에게 주문을 할 때 상사가 자장면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짜장면이라고 하는지. 원칙주의자인지, 아니면 융통성이 있는 사람인지.

친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친구들 하나하나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지 관찰한 다음에 메뉴를 고르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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