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한국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단순한 문학상의 쾌거를 넘어, 한국 문학이 세계적 무대에서 인정받는 역사적 순간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예술과 문화가 지닌 보편성과 개별성이 동시에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 한국이 가진 국가적 특수성에 가려져 특수한 장르로 치부되어왔던 한국의 문학은 이제 세계인의 이야기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번 수상은 한국 문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동안 세계 문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아시아 문학의 저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단지 한강이라는 개인 작가의 성취가 아니다. 개인에 국한된 축하받을 일이 아니다. 한국 문학과 더 넓게는 동아시아 문학의 풍부한 유산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긴 세월에 걸쳐 문화예술계에서의 각종 시상식은 서구 문명을 기준으로 성립되어 왔다.
각종 권위있는 상의 수상자의 대부분이 서양인이라는 것은 수상의 기준, 좋고 나쁨의 기준이 서양식의 사고에 기반하여 형성되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편향주의 서구 중심의 문화 지배적 사고. 이러한 세계적 분위기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영화, 소설, 시, 드라마 등 언어적 한계가 존재하는 모든 영역의 예술에서 서양 세계에서는 동양의 예술을 이해할 의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동양의 예술들 중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에 대해 알아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19년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국의 국문학 예술의 예술성은 오랜 시간 쌓아온 것이며, 그 작품성 또한 인정받고 있어왔다. 비록 서구 문화권에서는 비영어권, 동양권이라 특정화하여 분류하였지만 유사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한국의 미디어 문화, 국문화가 우수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던 참이었다. 더 이상은 아시아의 지역적 한계 안에서, 넘치는 한국의 문화력이 수용되지 않을 만큼 넘치고 넘치자,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대상. 영화감독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마는 나는 아직도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기억이 난다. 자신의 작품이 대상에 걸맞는다기 보다,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대상의 품격을 지닌 채 발표되어 오고 있지만 세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세계인이, 서양인이 자막이라는 3인치의 한계를 벗어난다면 더욱 많은 명작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소감.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미국의 영화, 프랑스의 영상, 영국의 극을 보고 읽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문화를 보고 읽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화절대론적 사고관에서 세계가 글로벌화된 이후 동양에 있어서 서양은 배워야 할 대상이었기에 번역과 통역의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 그 문화를 익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서양의 입장에서는 문화절대론적 시각에서 동양은 서양에 비해 하위 수준의 문화였기에 배움과 공부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테 서양권에서는 자막을 읽어가며 영상을 보는 행위가 매우 이질적이며 어려운 행위가 되고, 번거로운 절차가 되었다. 또한 언어 생활을 하기 어려워 하는 이들이 미국 등의 서양권에서 더욱 많기에 글자를 읽어가며 영상을 보는 것이 더욱 어려웠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 속에서 넘칠듯이 터져나오는 동양의 수작들이 그 벽을 넘칠듯이 채우다가 결국 봉준호 감독이 그 벽을 터 버렸다.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최근 미국의 한 방송을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미국의 여성 3인조 밴드가 사회자와 대담을 하다가 나온 질문이 한국 노래를 좋아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아마 그들이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알려져 있었기에 그런 질문이 나왔었겠지. 여성 3인조 밴드에서 주로 발언을 하던 친구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사회자는 자연스레 다음 질문으로 한번 알고 있는 한국 노래를 들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 쯤에서 예상이 가능한 장면은 한국어 발음이 익숙치 않은 외국인의 어색한 발음으로 이루어진 억지스런 노래였었다. 외국인이 화면에 나와서 말하는 한국어는, 그리고 한국 노래는 대부분 어눌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밴드 3인조가 부르는 노래는 한국인의 발음의 그것의 음이었다.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인이 부르고 있다고 해도 믿을 법했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듯, 영어권 사람들 또한 한국어를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하는데, 화면에 나온 밴드 멤버들은, 그야말로 편안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여 노래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정취마저 느낄 수 있던 곡이었다.
이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대담 쇼에 BTS가 자리했을 때였다. BTS 멤버 중에서 RM은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유명하다. 쇼의 진행자가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RM은 미국인이라 해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발음으로 영어를 잘 하게 된 비결을 말했었다.
한강, 한국의 작가. 소설가이자 산문가. BTS가 한국음악을 세계에 알려 부르고 싶은 노래로 만들었듯, 한강은 한국의 이야기들을 읽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제는 세계는 한국의 이야기 속에 새로운 세상을 펼치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흘러, 한국의 역사, 국사 과목 2024년 10월의 어느 날을 배우고 암기하겠지. 한국인 최초로 비행기 파일럿이 되었던 사람처럼. 한국인 최초로 안경을 썼던 사람처럼. 한국에 최초로 전기가 동작했던 날처럼. 한국의 문학이 당대 최고의 글이 되었던 날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