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은호

지내십니까.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고, 해야 할 일, 못다한 일. 등등. 등등. 그런 것들이 가득히 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오늘을 잘 보냈습니다.


오늘 낮에 통화를 했습니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턱에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분명 그랬는데, 문득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핸드폰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던 때. 그때부터 나는 한결같이 통화라는 것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문득 뜨거운 박동처럼 목소리를 듣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면 일찍 잠에 들었을 시간이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않습니다. 저녁 시간을 넘어 좋아하는 책을 보았습니다. 가족이 사랑으로 , 사랑이 일로, 일에서 다시 사랑으로 사랑이 마음으로 넘어가는 이야기. 벌써 다섯 번 정도 읽었는데, 이것이 아끼고 아끼고 읽어서 이 정도입니다. 이 작품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몽글해 져서 내가 노란색 젤리 덩이가 되어 여기 집에서 백여 미터 앞에 있는 강가에 띄우면 노랗게 떠다니게 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한참을 읽다 보니,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졌습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실 때에는 괜찮았어요. 새까맣게 내린 커피를 라뗴로 마실 때도 괜찮았어요. 오미자와 복분자와 스윗츠를 넣은 것을 마실 때는 이젠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어요. 편지를 쓸 때면 매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네 종류 정도의 나들이 모여 각자의 소리를 내거든요. 편지를 쓰고 있는 나. 편지를 쓰는 동안 생겨난 감정에 맞춰 다시 다른 이야깃거리를 적고 싶어 읊는 나. 한 모금 마시고 내려 놓은 잔을 타고 들어왔으면 가장 멋질 햇빛의 몇 시의 시간일까. 하는 생각. 두 시. 네 시. 열두 시는 너무 이글해. 내게도 나에게도 부담스러울 걸. 맞아. 이 단어를 적을 떄에는 그 노래를 들어야 해. 아차. 나는 아직까지는 추가로 팔을 설치하지 못했어. 왼손으로 종이를 고정하고 오른 손으로 펜을 들었으니, 노래를 재생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낼 세 번째 손이 아직은 없어. 음성인식으로 동작하려 해도 안되는 걸. 내가 지금 틀려는 노래는 가사와 리듬에 맞춰 찾아야 하거든. 아. 그러고 보니 입도 하나 더 필요해. 지금 나는 뭔가 이름 같은 것을 노래처럼 흥얼거리고 있으니까. 부르고 싶은 소리와 듣고 싶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다니 인간은 어리석구나.


어리석구나,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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