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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21. 2024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6화

이것이 강이라면

정의는 도시의 마지막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크로플 가게는 바로 길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고 긴 길이었다. 학교를 나서고부터 약 1시간 20분 가량. 그리고 조금 더. 하지만 기분은 마치 2주는 기다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정의는 자전거의 손잡이를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길 건너, 가게의 간판에서 발산되는 따스한 조명이 저녁 하늘에 별처럼 반짝였다. 시계는 7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정의는 오늘 저녁에 그토록 기다려온 크로플을 맛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신호등 앞에 서 있었다.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이 7시 30분이라고 들었기에, 그녀는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의는 불안해졌다. 조금 전까지 없었던 불안은, 갑자기 그 형태를 이루기 시작하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가게의 창으로 보이는 주인 아저씨는, 가게 안을 왔다갔다 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정의는 그 모습에 불안함이 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설마 벌써 문을 닫는 것은 아니겠지?" 

정의는 속으로 조급해하며 생각했다. 가게 내부에서 주인 아저씨가 재료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서 어떤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횡단보도의 앞에서 기다리는 이 시간. 이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마치 부산시 전체에서 가장 느리게 초록불로 바뀌는 것이 바로 여기 있는 이 신호등만 같았다. 정의는 횡단보도 앞에서 초조하게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초록불로 바뀌지 않는 신호등은 그녀에게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흐를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매 초가 정의의 긴장감을 더해주었고,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정의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서 초조하게 신호를 기다리며, 가게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초록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마치 촉각이 뾰족해진 것처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그녀는 가게의 세세한 부분에 눈길을 멈추지 못했다. 


띠리링- 


신호등의 파란 불이 바뀌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정의는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눈앞의 가로등이 점점 어두워지고, 길 건너편의 가게에서는 직원이 입간판을 접고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정의는 속으로 “안돼! 크로플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라며 절박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었다. 정의는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차분한 걸음으고 가게로 다가갔다. 서두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서두른다고 해서 잘못될 것도 없지만.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바뀌는 것은 있지 않을까.' 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마음속으로는 “제발, 크로플이 남아있어야 해. 제발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줘”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신호를 기다릴 때의 초조함이 그녀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길을 건너며 보이는 크로플 가게의 내부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매장 안에는 따뜻한 조명이 가게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들어주었고, 크로플이 갓 구워지는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그 향기는 정의에게 오랜 기다림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본 가게는 멀리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포근함을 자아냈다. 창문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빛은 아이보리색에서 살짝 더 누렇게 바랜 듯한 햇빛의 색을 띠고 있었고, 그것이 거리 위로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내부는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저녁이 가까워졌음에도 가게 안은 마치 아침의 햇살을 담은 듯한 밝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의는 가게 맞은편에서 천천히 가게를 살펴보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안락한 풍경을 감상했다.


벽면에는 나무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정겹게 걸려 있었고, 그 아래의 선반에는 손때 묻은 듯한 오래된 잔과 찻주전자들이 놓여 있었다. 크로플들이 가지런히 놓인 선반은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듯했고, 작은 장식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잡아 가게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가게 내부는 따뜻한 색조의 나무로 주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으며, 바닥은 어느 고요한 나라의 시골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한 돌타일로 마감되어 있었다. 그 타일은 햇살을 받아 반사되는 빛과 함께 작은 마당을 연상시키는 따뜻함을 주었고, 벽에는 손으로 짠 듯한 카펫과 전통적인 문양의 패브릭이 포근하게 걸려 있었다. 정의는 이런 따스한 인테리어가 한적한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집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을 주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가게 안은 차분한 공기와 함께 촛불의 은은한 향이 섞여 있었고, 벽난로 옆의 작은 책장에는 누군가 정성껏 꽂아둔 오래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작은 집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쉼터 같았다. 정의는 잠시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 가게가 주는 따뜻한 위안 속에서 몸과 마음을 푹 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분주히 움직이며 매장의 끝자락에서 재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의의 눈에 들어오면서, 그녀는 불안한 마음 속에서도 그의 세심한 손길을 관찰했다. 아저씨의 머리는 희끗희끗해 보였고, 검정색 앞치마를 두른 채 재료를 다루는 그의 손은 숙련된 듯 능숙하게 움직였다. 정의는 그의 얼굴에 비치는 피로감과 동시에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엿보이는 것을 느꼈다. “이분은 정말 이 일을 성실히 하시는구나.” 정의는 속으로 감탄하며도, 자신이 얼마나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되새기며 마음이 불안해졌다.


"어서 오실까요?" "네?" 가게에 들어가지 않은 채, 밖에서 가게 안을 기웃거리고 있노라니, 가게 바깥의 작은 카운터로 난 창으로 목소리가 넘어왔다. 창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정의를 바라보고 있는 직원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짧게 자른 머리와 그윽한 눈빛이 정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가게 안에서 철판을 닦으며 가끔씩 밖을 내다보며, 정의의 눈길을 가끔 받기도 했다. 그의 표정은 묘한 미소를 담고 있었고, 정의는 그의 그 미소가 자꾸만 자신의 조급한 마음과 대비되어 보였다. “이 사람, 지금의 제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정의는 속으로 불안해하며, 직원의 표정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으려 애썼다.



잠시 젖혀 두었던 불안이 다시 정의를 찾아왔다. 정의는 자신의 숨이 짧아지고 가슴이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다급한 마음으로 직원에게 말했다. “크로플이요, 크로플 있어요?” 

직원은 짧은 머리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정의를 쳐다보며, 묘한 미소만을 지었다. 그의 표정은 정의의 조급한 마음과는 상반되게 느껴졌다. '왜 대답하지 않는 거지? 정말로 크로플이 다 팔린 건가?' 정의는 속으로 불안에 휘말리며,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직원은 여전히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의는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제발, 부탁이야. 마지막으로 크로플을 한 개만이라도 달라고.' 정의는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그녀의 눈은 직원의 얼굴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가게 벽에 걸린 시계가 7시 30분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을 확인했다. '아아, 끝났어. 시간이 다 되었어. 늦었어.'

 

그 순간, 해가 지면서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의 조명과 매장 내부의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크로플의 마지막 운명을 알리는 것 같았다. 

정의는 그 모습에 점점 더 좌절감을 느꼈다. “다 팔려버린 건가? 이렇게까지 기다렸는데, 마지막 순간에…” 정의는 속으로 조용히 울며, 가슴 속의 불안과 긴장감이 점점 커져갔다. 


직원의 뒤로 보이는 가게 벽에 걸린 시계는 정확히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정의의 눈에는 시계 바늘이 천천히 움직이는 듯 보였다. 나는 크로플을 먹을 수 없을 운명인건가. 나는 안되는건가. 정의의 마음은 져 버린 하늘빛처럼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혹시 있을 지도 모르잖아. 내가 학교에서 온 만큼의 시간만큼 여기서는 좀 더 늦게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것 아냐? 

'제발, 나에게 기회를 줘. 마지막으로 크로플을 한 개만이라도…' 정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불안한 시선을 직원에게 보냈다. 이 순간이 끝나기 전까지, 그녀는 마지막 남은 희망을 붙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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