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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14. 2024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5-3

시장과 수공예의 작은 세계


다음으로 정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장식용 세라믹 화분이었다. 세라믹의 표면은 부드럽고 매끈했으며, 그 위에 새겨진 패턴은 정성스레 손으로 조각한 듯 섬세했다. 정의는 조심스럽게 화분을 손에 들어올려 천천히 돌려보았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세라믹의 색감과 질감이 화려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녀의 눈앞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화분에 새겨진 작은 꽃무늬들이 마치 봄날의 새싹처럼 소중하게 피어나는 느낌을 주었다.

“이 화분은 그 안에 담긴 식물과 함께 자라면서 더 큰 아름다움을 더해줄 거야.” 정의는 화분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라믹 화분은 단순히 식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 깃든 공간이었고, 그 공간은 시간이 지나며 식물과 함께 더 빛을 발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 화분 안에 어떤 식물이 심길지 상상하며, 그 식물이 햇살을 받고 자라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장식된 패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잎사귀들과 어우러져, 그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정의는 이 화분이 집 안의 한 구석을 환하게 밝혀줄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 놓여 있던 것은 전통 장식품들이었다. 왠지 이 공간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보면서 정의는 엄마는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오래된 어떤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데도 정의의 엄마는 이런 옛스런 것들이 잘 어울렸다. 한국의 전통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그 장식품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예술 작품 같았다. 정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장식품을 하나 집어들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그것이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의 숨결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식품에 새겨진 문양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했고, 각기 다른 색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이 문양들은 그 시절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담고 있겠지…” 정의는 마음 속으로 그 장식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 각 문양이 담고 있는 의미와 그 안에 숨겨진 감정들이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 색감은 단순히 장식품의 표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장식품이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시간의 조각들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 속에 깃든 역사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했다.


정의는 장식품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 안에 담긴 전통의 문양들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품고 있는 듯했고, 그것이 전해지는 감정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아마 잠시, 이 순간에만 보여질 이 빛이 정의의 눈에는 눈부시고 환하고 환했다. 그녀는 이 장식품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것을 느끼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의는 수공예품 가게에서 보내는 시간을 잊어버린 듯 깊이 빠져들었다. 가게 안은 작은 우주의 일부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그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각 물건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나하나의 물건들은 그 자체로 고유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무로 정교하게 조각된 작은 인형들은 마치 오래된 기억 속의 사람들처럼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고, 손으로 염색된 천들은 자연의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각 물건에서 느껴지는 손길은 따뜻했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시간을 초월한듯한 감동을 주었다.


정의는 작은 나무 조각을 손에 들고 천천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 나무도 언젠가 커다란 나무였겠지. 그 나무가 살아왔던 긴 세월 속에서 본 풍경과 들었던 바람 소리, 그리고 그 아래에서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이 조각에 담겨 있을 거야.” 나무의 질감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웠고, 조각된 작은 인형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형은 마치 정의에게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이 작은 나무 조각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직감했다.


또 다른 코너에는 염색된 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천에 배어든 색깔들은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정의는 그 천을 손에 들어올려 천천히 펼쳤다. 자연에서 얻은 색소로 염색된 천들은 각기 다른 계절을 품고 있었다. 어느 것은 늦봄의 따스한 바람을 닮은 연초록색이었고, 어느 것은 깊은 가을의 저녁노을을 닮은 붉은색이었다. 정의는 그 색들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색깔들은 마치 자연의 소리,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속삭임 같은 것을 담고 있었고, 그것은 천을 만질 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렸다.


“이 색은 정말 놀라워. 자연에서 온 색들이 이렇게 따뜻하게 마음을 감싸는구나,” 정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염색 천의 감촉을 느꼈다. 이 천들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분명 있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더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천천히 시간과 함께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란 걸 직감했다. 천이 가진 색의 깊이는 마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그 세월 속에서 자연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가게 한쪽에서는 작은 자개 장식품들이 빛을 반사하며 은은하게 반짝였다. 정의는 그 자개의 빛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다가갔다. 자개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녀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작은 우주를 상상했다. 빛에 따라 변하는 색들은 마치 바다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빛줄기처럼 신비로웠고, 그 빛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자개는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빛을 만들어내는구나,” 정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개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그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자개는 그 안에 바다의 이야기, 그리고 하늘의 별빛을 담고 있는 듯했다. 자개 장식품을 손에 들고 있자니, 그녀는 그 빛 속에서 수많은 추억과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 장식품은 그저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정의는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것 같은 이 가게에서 자신만의 작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그녀는 마치 아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은 모든 물건들은 하나하나에 자세히 다가가면 정의에게 전해주고 싶어 안달난 듯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손끝으로,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그 물건들이 전해주는 감정을 천천히 음미했다. 시간은 어느새 잊혀진 듯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그녀는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 이 공간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하며 그곳에 머물렀다. 각 물건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정성은 그녀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그 순간들이 쌓여가는 동안 정의는 그곳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어느 순간 정의는 문득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문을 나섰다.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이 문을 나서면 다시는 이 가게에 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다시 오고 싶은데.'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시장의 끝으로 향하는 길에 그녀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동과 따뜻함을 느꼈다. 시장에서 바라본 풍경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 가게 주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나눠지는 짧은 대화들조차 모두가 그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정말 특별했어.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새로운 발견과 소중한 기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정의는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시장의 풍경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이 시장의 정겨운 풍경, 그리고 수공예품들에서 받은 감동은 그녀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제법 어두워진 하늘을 따라 정의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저 새의 까만 그림자가, 가게 안에서 본 조각만 같아서, 작게 봄에도 애틋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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