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수공예의 작은 세계
공기 중에는 아직 못 다 내린 비가 섞여 촉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촉촉함의 속을 지나치며, 정의는 저기 앞에 열려 있는 작은 시장을 발견했다. 시장의 입구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자전거를 손에 끌며 시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정의는 시장의 다채로운 풍경과 활기찬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시장의 공기는 다양한 음식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정의는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작은 여행의 시작을 만끽했다.
정의는 시장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상점들을 구경했다. 시장의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은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그곳에서는 간장게장과 떡볶이, 오징어볶음과 같은 전통적으로 맛있는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 중 어떤 것도 맛있어 보였지만 그중에서도 족발 가게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정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어깨에 에코백을 매고 족발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의는 그녀가 족발의 향기와 맛을 갈망하며 고심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삶의 일부분과 그리움을 상상해 보았다. “눈빛이 깊어 보이네. 아마도 뭔가가 그리운가 봐. 혹시 무슨 기억이 얽혀 있는 걸까?” 정의는 그녀의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두 개의 줄기가 마주하는 시냇물 같은 흐름이 마주가는 복잡하고 소란한 시장의 길 한가운데. 그곳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활기찬 표정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의 모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다 통화 중에 가끔씩 시장의 천장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던 그의 모습이 정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말하는 아저씨의 통화는 희한하게도 소리는 들리는데 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할 그런 신기한 통화였다. 아저씨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도 않은 채, 시선을 시장 천장 높이에 두고 통화를 이어갔다. 파도 속에 있는 움직이는 바윗섬 같달까. 누군가와 오래도록 통화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의 속에 서 있으면서도 그의 어깨는 외로워도 보였다. 정의는 그 남성의 집중력에 감명을 받으며 그의 태도를 바라보며 지나쳐 갔다.
'시장은 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 걸까?' 사람들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산처럼 있을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지만 안 되겠지. 갑자기 크게 웃는 맑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오뎅과 떡볶이를 먹으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초등학생 세 명이 보였다. ㅇㅇ 분식. 남루한 간판이지만 잘 닦여진 그 아래의 조그마한 포장마차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들이 물고 있는 오뎅 하나가 그들에게는 어떤 비싼 요리보다 맛있고 좋아 보였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활기 넘치는 표정은 정의에게 순수한 기쁨을 전해주었고, 정의는 그들의 기분이 전염되듯이 즐거운 감정을 느꼈다. “어쩜 이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쟤네들의 웃음소리는 내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정의는 가슴 앞에 작게 손을 쥐어 보였다.
어떤 친구들은 정의더러 무표정하고 재미없다고 말하곤 했다. 정의가 큰 소리로 웃는 경우가 없어서인지, 정의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한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재미없다며, 차갑다며.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의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정의에게 즐겁게 산다고, 재미있는 생각으로 산다며 말해주었었다. 오히려 그런 말들을 섞어 들으면서 정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욱 헷갈려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각기 다른 제각각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시장을 이렇게 걷고 있자니,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의 색깔을 가진 것만 같았다. 내 색깔은 뭐지? 아까의 아이들처럼 나도 저렇게 웃기도 하나? 사람들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갑작스레 웃음의 파도에 휩싸인 정의는, 짙고 짙은 노란 감정의 색깔에 젖어 자신에 대해 작은 의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시장 안에 있는 작은 교차로를 지나니 시장길은 조금 한산해졌다. 뒤돌아보니 교차로에서 다른 방향으로는 여전히 북적이는데, 교차로를 가로질러 바로 오는 이 길만이 조금 한산했다. 저기 앞에서는 회색 모자와 가죽 재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시장의 구석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차분하고 신문을 주의 깊게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리로 가득 찬 공간에서 글자를 보는 남성. 시장의 소음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분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여기에 보냈을까? 신문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이네.”
'그러고 보니.' 정의에게 신문이란 단지 개념일 뿐이었다. 정의의 엄마도 아빠도 신문을 읽지 않는다. 정의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떨어지지 않게 충분한 마음으로 신문을 읽지 않고 있었다. 신문을 읽어 본 적도 없고, 읽어볼 생각도 없었기에, 신문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아!" 정의는 한 친구가 떠올랐다. 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야말로 책 그 자체인 것 같은 친구. 강다현. 다현이는 때때로 신문을 읽는 것 같았다. 지난번 반 친구들과 모여 학교 근처 카페에서 파르페를 먹을 때, 카페 잡지 함에서 다현이가 신문을 꺼내 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번 물어봐야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정의는 신문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다현과 친해질 생각에 즐거워졌다. 책을 읽는 사람이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겐 늘 어려운 사람이니까. 친해지고는 싶은데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시장의 장면은 바뀌어 있었다. 시장은 한 칸 한 칸이 다르다 보니, 잠시 정신을 팔고 있으면 순식간에 눈앞의 광경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저기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눈에 띄는 두 점이 정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젊은 남녀 커플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장을 걷고 있었다. 남성은 스포티한 재킷을 입고 있었고, 여성은 흐르는 긴 머리카락과 캐주얼 복장으로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둘은 시장을 채운 시장의 색깔들의 중에 둘이서만 둘의 화사하고 빛나는 어떤 것을 가지고 걷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반응을 살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정의는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사랑이란 이렇게 자연스럽고 따뜻한 것인가?” 당연하지만 나는 아직 사랑을 몰라. 그게 왜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당연하니까. 세상 여기저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넘칠 듯이 사용되는데 진짜 사랑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어. "엄마랑 아빠는 사랑을 했겠지?" 정의에게 정의의 부모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지 사랑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늘 다정한 둘의 모습은 정의를 크나크게 안고 있었다. 두 분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본보기 같았다.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부모님을 떠올리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도 언젠간 사랑을 하게 될까.'
여고생이라고 함은 더 이상 아이일 수 없는 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 되지도 못한 나이다. "아마, 그래서일 거야." 이 시기의 애들이 망가지기 쉬운 이유가. 아이의 세계에 담겨 보듬어지지도 못하고,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는 시기. 학교에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리게 되는 것이 학교라는 장소인 것. 그러다 보니 전해져 오는 이야기,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한 애들이 적지 않았다. 반에 삼삼이 모여 이마를 맞대고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남자, 남학생, 남자 연예인의 이야기였다. 그런 주제가 나오면 여고라는 공간은 교제를 시작하고 있는 부류와 아닌 부류로 확실하게 나뉘게 된다. 교제를 하지 않고 있는 부류에서도 아주 진한 곳, '남자가 뭐야? 그게 뭔데?'라는 특출 난 부류. 정의는 그 안에 속해 있었다.
"언젠가 나도 사랑을 해야 하게 될까?" 그런 주제에서 정의가 이렇게 말을 하면 친구들은 호들갑을 떨곤 했다. 당연하지. 그럴 거야. 등등, 등등. 조용한 타입이라 말이 없는 다현은 그때 정의에게 말을 걸었었다. "언젠간 우리 모두 사랑을 할 거야." "응, 응? 응!" 몰랐었다. 다현의 눈동자에는 갈색 빛이 짙구나. 창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다현의 눈빛에 모여 바다에 파인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현의 손에서 전해지던 그때의 온기는 다현이 손을 놔준 다음에도 남고 남아서, 화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했다. 그 이후로부터였다. 정의가 "나도 언젠가는 사랑이라는 걸 해야 하게 될까?"라고 말하던 것이 "언제는 나도 사랑을 할까?"로 점차 그 방향이 바뀌게 된 것이.
어느새 커플은 정의의 눈앞까지 다가왔고, 둘은 그들만의 대화를 하며 정의를 지나쳐갔다. 하아. 정의는 왠지 모를 아쉬움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모르는 사이니까, 그냥 정의를 지나쳐 가는 것이 당연함에도. 저렇게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의 모습으로 있는 것 같은 커플이 정의를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쳐 갈 때면, 언젠가 혹시 올 지도 모를 정의의 사랑도, 정의를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터덜거리는 리듬이 된 정의의 발걸음은, 시장 바닥에 얕게 고여 있는 물 조금을 만나 찰박찰박했다.
시장엔 이어서 청과물 가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부모님과 같이 온 걸까.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바나나를 들고 있는 소녀는 바나나를 자랑스럽게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과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고, 정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소녀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바나나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들고 있네. 참으로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야.” 저 아이가 들고 있는 바나나는 다른 바나나와는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 열대야의 섬들 중에 오래된 옛 왕조가 있는 그런 섬에서 자란 바나나. 그 섬에는 혹시 모를 정통 왕족이 살고 있고 그 왕족이 태어난 날에 첫 싹을 틔운 나무. 그 나무에서 맺혀 자라난 바나나. 저 바나나는 혹시 잊혀진 어느 왕조의 상징 같은 어떤 자리는 아니었을까? 아이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정말 마법 같은 어떤 이야기가 저 바나나에 잠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의 뒤로부터 아이와 대조되는 분위기를 감은 채 한 여성이 밀려오고 있었다. 안경을 쓴 중년 여성은 시장의 한 상점에서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진지하게 상점의 물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신중하고, 물건의 품질을 확인하는 모습에서 세심한 성격이 드러났다. “이분은 아마도 물건의 진가를 잘 아는 사람일 거야. 저런 분이 고르는 물건엔 실수함이 없지.” 왠지 정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여성의 곁으로 끌려갔다. 시험을 칠 때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 근처에서 치면 왠지 좋은 점수가 나올 것 같은 기분과 같달까. 이 여성의 곁에 있으면 맛있는 것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의는 슬그머니 여성의 근처로 가서 여성이 눈여겨보는 것을 같이 보았다. 사과들이 모여있는 칸에서는 어느 사과나 다 같이 맛있어만 보이는데, 여성은 소쿠리에 담긴 사과들을 무리씩 한 번씩을 한참을 보더니 한 소쿠리에 손을 뻗었다. 저 사과들을 사려는 건가? 싶었는데 여성은 그 소쿠리에서 밑에 가려져 있던 사과 두 알을 꺼내더니 아직 소쿠리에 담기지 않은 채 쌓여 있던 무리 중 두 알을 꺼내 담아 소쿠리 하나를 완성했다. "이렇게 할게요." 여성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소쿠리를 내밀며 지폐를 함께 건네 보였고, 주인아주머니는 크게 불쾌한 기색도 없이 어쩔 수 없단 듯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담아 건네주었다.
정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지나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알은 왜 꺼낸 거고 밑에 쌓여 있던 것 중에서 두 알은 왜 담은 거지? 규칙을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경기를 본 것 같달까? 왠지 패자가 된 듯한 주인아주머니는 패자 답지 않게 상쾌한 표정이었고, 승자인 중년 여성분은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지도 않고 다음 승부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 다음은 생선이군.
중년 여성의 계속되는 승부가 궁금하긴 하지만 길을 멈출 만큼은 아니었다. 정의의 뒤로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장의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고 정의는 흐름에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어? 저런 곳이 있네?" 한 꼭지를 더 지나다 보니 조명이 더 밝아진 시장의 부분이 나타났다. 환한 조명 아래는 조명의 빛을 일부 모았다가 다시 반사하는 것들로 오래된 시장을 반짝반짝 눈부시게 하고 있었다. 나이 든 여성, 외국인, 어떤 중년의 남자분. 각색의 손님들이 앞을 서성이는 가게는 공예품을 파는 가게 같았다. 입구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어 이곳이 한국 국적의 가게라고 알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 맞아. 한국의 가게라면 태극기 정돈 걸어 놔야지.
시장 길의 가판대에는 한 청년이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짧은 머리의 청년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의 빈티지한 아이템들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아이템에 대한 흥미와 감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정의는 그가 물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빈티지 아이템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지네. 이런 열정이 물건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아.” 나는 모르는 어떤 가치. 세상은 가치 있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제 막 이 가게에서 나온 듯한 한 중년의 여행객은 여행 가방을 들고 지도를 펼쳐 들고 시장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는 지도와 주변을 비교하며 시장의 다양한 상점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고, 정의는 그가 여행 중의 특별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여행객의 눈빛 속에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열정이 담겨 있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새로운 것을 탐험할 수 있기를 바라.” 여행을 가면서 길 하나 찾지 않고서 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신의 몫이지. 정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게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의는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게의 안은 수공예품으로 가득했다. 가게 내부는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따뜻한 조명이 각 물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다양한 전통 공예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가게의 분위기는 정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라탄 바구니를 보자마자 정의는 시선을 사로잡혔다. 손으로 엮어진 바구니들은 따뜻한 갈색과 자연의 느낌을 주었고, 각 바구니의 섬세한 엮임과 짜임새가 눈에 띄었다. 한 번은 저것을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든다고 들은 날 어찌나 호들갑을 떨며 놀라 했는지, 옆에 있던 친구들이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들먹이며 정의를 놀려대곤 했다. 그래 맞아. 누군가 만들긴 했겠지. 내가 왜 그런 당연한 생각을 못했을까. 정의가 보아왔던 라탄 바구니들은 모두 완성된 채로 진열된 것들 뿐이어서, 그것이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정의는 작은 바구니를 손에 쥐어보며 “이 바구니는 아마도 작은 장식품으로도 훌륭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바구니의 표면은 부드럽고 탄력 있으며, 가벼운 손길에도 잘 견디는 견고함이 느껴졌다. 그 옆의 종이부채는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정의의 눈길을 끌었다. 각 부채의 위에는 섬세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이 부채는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어 줄 거야,”라고 상상하며 부채를 펼쳐 보았다. 종이의 질감과 그림이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전해졌다.
가게 안은 만든 사람의 정성이 그대로 모양을 이룬 것들만 같았다. 어느 것 하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것이 없어 보였다. 하나하나에 길고 긴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 여기 들어온 손님들이 저렇게 하나하나를 깊게 살펴보고 있는 것이겠지. 가게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도자기 칸이 보였다. 새하얀 종이 같은 그릇에 그려진 아름다운 청백의 그림들. 이곳은 도자기 제품들 중에서도 찻잔 같은 다기 제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듯했다. 도자기 찻잔들은 정교한 그림과 섬세한 패턴이 돋보였다. 정의는 찻잔을 손에 쥐어보며 “이 찻잔은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더해줄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찻잔의 매끄러운 표면과 세밀한 디자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찻잔의 입구에 있는 작은 금빛 라인이 차가운 외부 세계에서 따뜻한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 잔으로 마시는 차는 어떤 맛으로 열릴까. 엄마가 아끼는 무슨 차가 주방 찬장에 있었지.
정의의 엄마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이라 대신 차를 즐겨 마신다. 그것도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온도와 습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마시는 것을 즐긴다. 엄마는 그렇게 마시면 좋아? 어느 날 정의가 그렇게 물었더니, 엄마는 좋지. 좋아. 좋고 말고.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맛이 있어 보이게 마시는지 하루는 오빠와 정의가 엄마한테 차 좀 나눠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단칼에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아들 딸한테 차 한 잔 안 나눠 줄 수가 있냐고 오빠는 따져 물었고 정의는 옆에서 동조로 힘을 보탰다. 그때 엄마는 찻잔에서 입을 떼고 조용히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의 가치는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 앞에 놓아지는 거야. 너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엄마의 말에 오빠와 정의는 상처받았고, 이미 오래전에 상처받은 전우인 아빠의 곁으로 간 오빠는 둘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아직 나이가 차질 않아 오빠와 아빠의 자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정의는 분하고 억울해서 엄마, 나빠.라고 외치고 방으로 올라갔었다. 그게 작년이었던가, 재작년이었던가. 지금이라면 엄마는 그 귀하게 아끼는 차를 나눠줄까? 예쁜 찻잔을 손에 들고서, 이것을 선물하면 엄마는 기뻐할까 생각해 봤다. 아마 아닐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엄마만 마시는 찻잔이 따로 있다. 손님들에게 내어줄 때, 같이 마실 때는 꺼내지 않는 찻잔. 새하얗고 뽀드란 느낌이 날 것만 같은 예쁘고 예쁜 찻잔. 내가 이 찻잔을 엄마한테 선물해 준다고 해도, 이 찻잔이 엄마의 소중한 그 찻잔보다 예쁨 받진 못하겠지. 정의는 체념 약간과 이름 모를 감정을 느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 작가 주 : 15화는 내용이 길어진 관계로, 2~3회로 분할하여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