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수공예의 작은 세계
찻잔 옆 진열장에는 다양한 나무 조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것처럼 정교하게 조각된 인형들은 나무 본연의 결과 질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나무의 온기는 따뜻하면서도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정의는 그 중 한 인형을 손에 들어 올렸다. 인형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미소가 새겨져 있었고, 그 작은 입술과 반짝이는 눈매는 마치 오래된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 인형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을 거쳐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정의는 생각했다. 정의의 방에도 정의가 아끼는 토끼 인형이 하나 있다. 정의가 집에 있을 땐 늘 무릎 위에 두는 그 토끼 인형은 정의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정의와 함께 한 친구다. 아마 정의의 토끼 인형처럼, 이 인형들도 누군가의 집에서 그 아이의 밤을 지켜주겠지. 인형의 표정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이야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을 기다리며 살아온 존재들처럼 느껴졌다. 인형들이 그 작은 몸짓 속에 감춰둔 이야기가 하나하나 풀릴 것만 같았다. 인형의 손은 자그마한 꽃을 쥐고 있었고, 그 자세가 어딘지 모르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정의는 그 꽃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인형이 그 꽃을 소중히 품고 살아온 시간들을 상상했다. 마치 오래된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인형의 삶이,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꿈들이 정의의 마음 속에서 서서히 펼쳐졌다.
그 옆에는 화려한 전통 의상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눈길을 끄는 색감과 섬세한 자수들은 오랜 전통의 무게와 기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정의는 손끝으로 한복의 비단을 살며시 만져보았다. 실크의 부드러움이 손바닥에 스며들며 마치 오래된 축제의 순간을 담아내는 듯했다. “이 의상들은 그 시절의 기쁨과 축하,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품고 있겠지…” 그녀는 눈을 감고 과거의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언제의 과거에 정의는 이런 옷을 입었었을까. 이 옷을 입었던 정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나라면. 정의는 옷에 가까이 다가갔다. 옷은 가까이 다가갈 수록 더 선명한 색을 내뿜고 있었다. "이건," 결혼의상일까? 화려한 색깔에 색색이 들어 있는 각종 무늬와 자수. 옷의 팔 부분을 들어 손바닥에 얹어 보았다. '아마 나였다면.' 내가 이 옷을 입은, 옛날의 사람이었다면 여기 쯤에 뭔가를 넣어 뒀을 거야. 뻗었을 때 팔목에 올 부분. 정의는 그 부분을 조심스레 만져 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정성스레 잘 만들어진 옷감의 보드란 촉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하아." 그렇겠지. 그런 극적인 만남이 있겠어?
각각의 자수와 무늬에는 오랜 전통과 함께한 특별한 날들이 깃들어 있었다. 정의는 자수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를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그 선명한 색감과 아름다운 디자인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함께 입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정의는 이 의상을 입고 춤을 추던 사람들, 그 옆에서 웃으며 손을 잡던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 속에서 그려보았다. 한복의 깃과 소매가 펄럭일 때마다 전해지는 시간의 흔적들이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다음 진열장에는 핸드메이드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었다. 초콜릿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정의는 그 상자를 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상자는 사랑스럽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초콜릿은 마치 정성과 사랑으로 빚어진 작은 예술 작품 같았다. “이 초콜릿은 아마도 누군가의 손길과 마음이 담긴 작은 행복일 거야,” 정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초콜릿 상자를 열어보니, 각기 다른 모양과 색상의 초콜릿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안에 깃든 달콤함은 마치 누군가의 진심을 담아낸 것처럼 보였다. 초콜릿을 하나 들어올리니, 그 위에 놓인 섬세한 장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정의는 초콜릿의 부드러운 질감을 상상하며, 그 작은 한 입이 얼마나 많은 행복과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이 달콤한 조각들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끝에서 전해진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고라는 곳의 특성 중 하나는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중에는 젊은 남자 선생님들도 제법 있으니까. 정의네 반 친구들 중에도 있지만, 잘생긴 남자 선생님들에게 선물 공세를 하는 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정의의 친구들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 선생님이 싫은 건 아닌데. 뭔가 딱히 열렬히 좋아해지지 않는달까. 그러다 보니 정의와 정의의 친구들에게 발렌타인데이란 그냥 빨갛게 놀지 않는 동네 명절 같달까. 그래도, 뭐. 그런 날에 뚱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니 정의네 친구들은 평소에 먹고 싶었던 간식이 있으면 학교에 굳이 가져와서 서로 나눠 먹곤 했다. 그러나 정의는 아직 1학년이다. 여중을 나와 여고로 이어져서 어차피 그런 종류의 발렌타인 데이가 될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은 거의 다 다른 학교로 흩어졌는데, 여기서 친하게 된 친구들 중에도 역시 남자 선생님에 목 매는 타입은 없었다. '이런 데 담아서 나눠 먹으면 더 맛있을까? 맛있겠지?' 아직 초콜릿을 건네줄 때의 그 두근거림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정의에게 초콜릿이란 단순히 달달한 디저트 이상의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초콜릿의 향이 느껴질 것만 같은 진열대를 건너 그 옆에는 자개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개의 섬세한 빛깔이 여러 각도에서 반사되며 다양한 색을 내고 있었다. 정의는 자개 장식품을 손에 들어 천천히 회전시켰다. 그 빛나는 표면은 마치 작은 빛의 파편들을 머금은 듯, 은은한 무지개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자개들은 빛이 스칠 때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아낼 것 같아,” 정의는 생각했다. 정의는 자개 진열장 위에서 고개를 움직여 보았다. 메트로놈이 움직이듯. 삶의 무게가 지치고 무거워 머리를 움직이기가 곤란한 메트로놈처럼. 그렇게 천천히, 아주 느리고 천천하게. 그렇게 움직이는 정의의 시선에는 그 시선을 따라 마주하는 자개의 각기 다른 빛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개 하나하나가 마치 빛과 시간을 응축한 것처럼 그녀의 눈앞에서 반짝였다. 그 반짝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과 기억들이 깃들어 있었다. 정의는 그 자개를 바라보며, 오래 전 이 자개를 깎고 붙여 만든 이의 손길을 상상했다. 그 손끝에서 자개가 빛을 발하며 완성된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담겼을지 궁금했다. 장식품을 빛에 비춰보니,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정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이 자개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했다. 각기 다른 빛깔과 반짝임은 마치 세상의 다양한 감정들을 모아둔 것 같았다. 자개의 무늬와 빛이 만들어내는 작은 세계 속에서, 정의는 자신만의 감동을 천천히 느껴갔다.
정의는 잠시 고개를 들고 숨을 골랐다. 생각보다 넓은 가게의 내부는 몇 개의 가게가 이어져 있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물들의 전시장이었다. '자, 다음을 봐볼까?' 그 옆의 공간은 눈에 익숙한 곳이었다. '어? 아까 본 것 같은 곳인데?' 그곳에는 곱게 접혀진 천들이 정갈히 쌓여져 있었따. 수제 염색 천은 부드럽게 접혀 진열장에 놓여 있었고, 천의 결을 손끝으로 스치자마자 자연이 불어오는 듯한 감촉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천이 가진 자연의 색은 밝고도 은은하게 빛나며, 마치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긴 흔적처럼 잔잔하게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정의는 그 천을 살며시 손에 들어 올려, 빛에 비춰보았다. 천의 색은 햇살을 받아 더 깊어지고 부드러워져서, 그 색이 단순한 염료가 아니라 자연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이 천은 정말 자연의 색을 담고 있어…” 정의는 혼잣말을 하듯 속삭였다. 천을 만질 때마다 흙내음이 퍼지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이 그녀의 손에 담긴 것처럼, 그 색깔은 평온함과 차분함을 동시에 선물했다. 색은 어디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퍼져 있었고, 자연이 준 색이 그렇게 천의 표면에 조화롭게 흩어져 있었다. 정의는 그 천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촉과 냄새, 색깔을 통해 천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색들은 바다와 숲, 하늘,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간직한 듯했다. 손끝에서 퍼지는 감각은 마치 자연 속으로 들어간 듯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