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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Sep 10. 2024

검은 고양이와 자전거와 크로플 13화

우연한 만남은 새하얀 설탕 파우더처럼

정의는 자전거를 타고 크로플 가게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오늘 하루 열심히 빛나고 지고 있는 햇빛인데도 오늘따라 길이 더 화창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맑았고, 파랬던 하늘을 넓고 높게 올라 있었다. 계절을 따라 지나치는 부드러운 바람들이 정의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그 소소한 순간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의는 크로플을 먹을 생각에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길을 달렸다. 정의가 크로플을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로 약 2주. 그 동안은 정말 고되고 고된 정신적 고문의 날들이었다. 스스로가 이렇게 크로플을 먹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크로플. 기대된다.


크로플을 떠올리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길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길의 한 부분을 약간 듬성듬성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공연에 열렬한 사람들처럼이진 않았고, 공원의 잎사귀들처럼 나부끼지도 않았다. 약간의 궁금증을 가진 채, 약간의 호기심으로 모여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정의는 그들과 같은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서 그들이 보는 것을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중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정의는 자전거를 천천히 멈추고 그 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 듬성한 밀집군세를 지나가기에는 자전거는 너무나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게다가, '호기심도 마침 피어났거든.' 그런데, "저 사람이 누구지?" 정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군지 아예 알 길이 없는 사람은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저 얼굴은 조금 낯이 익었다. 


정의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며 그 무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들이 그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의는 남자의 얼굴을 알아차렸다. 그는 최근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의 인플루언서였다. 다양한 맛집을 탐방하며 브이로그를 찍는 그 남자의 영상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고, 그런 알고리즘은 이것저것들을 뒤지다 맛있는 건 없나 하고 중얼거린 정의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정의가 먹고 싶어하는 크로플, 그것을 리뷰한 유튜브 채널이 저 사람의 것이었던 것 같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 적이 있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훤칠한 키에 세련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특별히 화려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세련되었고 그의 손에는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카메라. 카메라라는 단어를 내뱉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카메라에 관련된 무수한 단어와 이론을 펼치는 아버지 덕에, 정의는 카메라라는 것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을 보유한 채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런 정의의 눈에는 카메라 어떤 것, 카메라 같은 어떤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 남자를 둘러싼 이 사람들에게는 뭔가 다르게 보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따. 정의는 그가 새로운 맛집을 소개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그의 영상에서 보던 그 모습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의가 유튜브를 꼬박꼬박 챙겨 보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크로플이라는 것에 환상의 탑을 쌓은 지 어언 반 개월. 환상으로 채워진 크로플이라는 이름의 탑의 어느 한 층엔 저 유튜버도 구석 한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의는 자기도 모르게 자전거를 멈추다 못해 길가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가던 길을 잊어버린 채 그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 촬영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가 소개하고 있는 곳은 30년 동안 운영해온 전통 있는 단팥빵 집이었다. '단팥빵...' 빵집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팥빵...' 빵집 입구에는 ‘30년 전통’이라는 글씨가 적힌 간판이 눈에 띄게 걸려 있었고, 그림자처럼 짙은 털의 고양이의 옆으로 가게 안쪽에는 빵 냄새가 가득했다. 냐옹. 가게 주변으로는 지나간 어느 봄날의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정의는 카메라를 든 그 남자의 손길이 빵들을 촬영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그는 마치 빵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빵집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빵집 주인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안정적이었으며,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단팥빵? 그런 건 아저씨들이 먹는 거 아니야? 정의가 만약 친구들에게 단팥빵을 먹으러 가보자고 하면, 친구들이 할 말은 뻔했다. 색깔이 안 예쁘다. 맛있을 것 같지 않다. 아저씨 같다. 등등. 그리고 등등. 냐옹. "단팥빵인가..." 


정의는 그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시선은 빵집 안으로 돌렸다. 가게 안은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다. 유리 진열대 안에는 신선한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빵들은 각각의 개성이 담긴 모양과 색을 자랑하며 정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소한 크림이 가득한 크림빵, 달콤한 단팥이 속을 가득 채운 단팥빵, 쫄깃한 식감이 느껴질 것 같은 찹쌀떡빵 등, 모든 것이 정의의 입맛을 자극했다. 특별히 단팥빵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의의 부모님도 단팥빵에 커다란 미련이 있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덕분에 디저트라면 어떤 하나에 잡혀 있지 않은 채 온갖 다양한 것들이 디저트라는 그 방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여고생에게 단팥빵이란, 조금 무리인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의 시간동안 정의의 마음에 크로플이라는 불을 붙여 놓은 유튜버가 소개하는 빵집의 이야기와 역사. 가게 주인의 단팥빵에 대한 열정을 듣고 있자니, 굳이 단팥빵을 외면하는 것도 우습게 여겨졌다. "그래, 뭐. 단팥빵이 별거냐?" 따릉. 촬영 중인 유튜버는 유리 문 안쪽, 가게 안에 있었고 그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유리문 밖 인도에 있었다. 그리고 정의는 막 구경꾼의 위치에서 유튜버의 인근으로 지위가 상승되는 중이라, 구경꾼의 시선은 정의에게도 몇몇 쏠리기 시작했다. '들어오면 안되는 건 아닐텐데...' 소리를 내어 말해보고 싶었지만, 소리를 내도 못 들을 거리와 위치라서, 정의는 말을 삼킨 채 빵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빵집 안은 따뜻한 빛으로 가득했고, 진열대에는 온갖 종류의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의는 진열대 앞에 서서 눈을 반짝이며 빵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가진 빵들이 그녀를 향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정의는 각 빵의 이름이 적힌 메모를 보는 대신, 스스로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정의는 빵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정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부드럽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둥근 빵이었다. 빵집 안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었을 때 제일 앞에 있기도 했고, 시선이 높게 맞춰져, 무려 삼 단짜리 매대의 맨 윗칸에 있기도 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둥근 빵이 정의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는, 그 위에 뿌려진 하얀 파우더 때문이었다. 동그랗고 포동포동한 빵 위에는 하얀 파우더가 가득 뿌려져 있었고, 빵은 살짝 미소 짓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의는 그 빵을 '파우더 미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안녕, 파우더 미소!' 정의가 속으로 부르자, 빵이 대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정의 씨!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제 파우더가 날씨만큼이나 부드럽게 당신을 감싸줄 거예요." 응? 정말?  정의는 빵이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는 상상에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넌 정말 부드럽고 달콤해 보여. 네 파우더는 마치 눈처럼 깨끗하고 하얗네.' 

"그렇죠? 전 당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눈송이들이에요. 한 입 베어 물면 마치 첫눈이 내린 아침처럼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정의는 '파우더 미소'와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길쭉한 빵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빵은 마치 구름처럼 폭신해 보였고, 빛나는 설탕 가루가 얇게 뿌려져 있어 살짝만 스쳐도 손에 달라붙을 듯했다. 빵 끝에서부터 삐져나온 크림은 마치 초대라도 하듯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크림은 단순히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과일 향이 은근히 스며들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풍미가 입안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정의는 빵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속에 든 크림이 단순한 바닐라가 아닌, 딸기와 망고, 그리고 살구의 상큼함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맛일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 달콤한 크림이 빵 속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한 입 베어물면 크림의 부드러운 촉감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과일의 향긋한 향이 혀끝에 맴도는 느낌. 정의는 이 빵을 '크림 속삭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치 속삭이듯 입안에서 달콤함을 전해줄 것만 같은 그 빵은,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을 품고 있었다.


'안녕, 크림 속삭임!' 정의가 말을 걸자, 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의 씨, 날 부르셨어요? 난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을 속에 담고 있어요. 한 입 먹으면 크림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당신에게 달콤한 속삭임을 전해줄 거예요."

정의는 상상 속에서 크림 속삭임과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다. "넌 정말 매력적인 빵이야. 네 속에 숨겨진 크림이 너무 궁금해."

"어서 나를 데려가세요, 정의 씨. 저는 당신을 위한 달콤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정의는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그 옆의 옆에 있는 작은 빵으로 옮겼다. 둥글고 작은 모양의 이 빵의 표면은 반짝이는 설탕 코팅으로 덮여 있었다. 하얗지만은 않은 복잡하고 오묘한 색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그 모습이 마치 작은 별과 같았고, 그처럼 빛나고 있었다. 정의는 이 빵을 "별빛 사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별빛 사탕, 넌 정말 반짝이는구나!' 정의가 속으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정의 씨! 저는 당신을 위해 준비된 작은 별이에요. 한 입 먹으면 마치 밤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 거예요."

정의는 별빛 사탕의 반짝임에 매료되며 말했다. 

'넌 참 예쁘고 반짝이는구나. 네가 주는 달콤한 맛도 별처럼 빛날 것 같아.' 

"저는 작고 귀엽지만, 제 안에는 커다란 달콤함이 담겨 있어요. 당신의 하루를 밝게 만들어줄 거예요."


정의는 이 빵들과의 대화가 재미있고 즐거웠다. 빵들이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와의 수다처럼 편안했다. 정의는 빵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정의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빵이 있었다. 바로 노릇하게 구워진 겉면에 다크 초콜릿이 듬뿍 뿌려진 빵이었다. 빵은 마치 작은 산처럼 솟아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한 조각의 체리가 놓여 있었다. 정의는 이 빵을 '초코 산타'라고 부르기로 했다.

'초코 산타! 넌 정말 커다란 산처럼 보여. 네 꼭대기엔 체리가 있어서, 마치 산 정상에 오른 기분일 것 같아.'

"정의 씨, 제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제가 가진 초콜릿의 풍미는 마치 산을 오를 때 느끼는 그 뿌듯함처럼 깊고 진하답니다. 한 입 먹으면, 마치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처럼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정의는 빵들과의 상상이 만들어낸 대화에 잠시 빠져들었다. 그녀는 빵들이 말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재미있어서, 그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너희 모두 너무 특별해. 정말 너희를 다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곧 정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크로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빵들과 대화하는 동안 크로플의 존재를 잠시 잊었지만, 이제 다시 생각이 났다. 정의는 빵들을 향해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오늘은 너희를 데려갈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언젠가 다시 올게."     


고개를 돌려보니 유튜버는 빵집 창가에 마련된 유일한 1인용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으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는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그 맛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고, 눈은 빵을 먹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정의는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가 느끼는 그 달콤함을 함께 느끼고 싶어졌다. 단팥빵의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팥의 맛이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가득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단팥빵은 어디 있었지?" 정의에게 말을 거는 빵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의는 가게를 다 둘러보지 못했다. "단팥빵, 맛있을까?" 모르지, 모르는 일이지. 

   

정의는 빵들과의 짧은 대화를 뒤로 하고, 빵집을 나서며 자전거에 올랐다. 크로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오늘은 그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빵들과의 대화는 그녀의 마음속에 작은 즐거움으로 남았다. 다시 자전거를 타서 페달을 밟으려 할 때, 빵집 안의 유리 벽을 통해 인플루언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정의를 보고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의는 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자전거를 타고 떠나며, 정의는 빵들이 자신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 또 놀러와요, 정의 씨!" 빵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빵, 빵. "단팥빵!" 빵, 빵. "크로플!" 크로플, 맛있겠다. 느긋한 저녁의 공기를 가르며, 정의는 달려갔다. 자전거와 크로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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