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길 위의 작은 도전들
정의는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노을진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던 수업 시간,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도시락을 먹으며 느꼈던 따뜻함, 그리고 가방 속에 있는 크로플의 달콤한 향기까지. 모두 정의에게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나는 기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었을거야.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자전거 핸들 위에 올려놓은 손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정말 좋은 날인데? 빨리 가야지. 빨리 집에 가서 가족들과 크로플 나눠 먹어야지!"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보랏빛이 도는 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더니, 이내 초록빛과 회색이 섞인 기묘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정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 무슨 일이야, 하늘이 왜 저래?" 평소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던 정의였다. 어떤 색깔이든, 어떤 색깔의 하늘이든 정의는 바라보고 좋아하고 아꼈지만, 오늘의, 지금의 저 하늘은 반갑지 않았다. 안돼는데. 정의는 미간을 찡그리며 자전거 속도를 살짝 늦추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진짜 오네? 오늘 비 소식 없었는데?" 정의는 손등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으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기상 예보에서는 분명히 맑다고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빗방울도 점점 굵어졌다. 정의는 갑작스런 비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가방에서 우비를 꺼냈다. "그렇지만, 괜찮지!"
그녀는 활짝 웃으며 우비를 꺼내 천천히 펼쳤다. "괜찮아, 우비가 있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정의는 차분하게 우비를 입었다.우비를 펼치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바람 소리와 섞여 들렸다. 빗방울은 우비 위로 톡톡 떨어져 그녀의 장갑과 헬멧을 적셨다. 하지만 정의는 침착하게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다시 탈 준비를 했다. 정의의 작은 동작들 하나하나에서 정의의 섬세함과 소중한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비의 끈을 단단히 묶으며 정의는 가방 속에 크로플을 떠올렸다. 비에 젖지 않도록 신경 쓰는 그녀의 손길은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치 작은 전쟁에 대비하는 듯만 했다. 크로플은 이제 그녀에게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설렘을 안겨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기쁨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정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비를 입고 나니 조금 추웠던 몸도 금세 따뜻해진 것 같았다.
자전거에 다시 올라탄 정의는 속으로 되뇌었다. "빗방울 정도는 아무 문제 없어! 괜찮아! 어차피 난 우비도 있고, 페달도 열심히 밟으면 돼!" 괜찮다는 말은 언제나 마법같아. 벌써 걱정이 없어졌잖아. 언제나 긍정적인 그녀는 지금 상황을 재밌는 도전처럼 여겼다. 빗방울이 자전거 핸들을 따라 미끄러져 내렸지만, 정의는 환하게 웃으며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고, 비도 점점 굵어졌지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이 저렇게 변한 것도, 어쩌면 특별한 하루를 위한 선물일지도 모르잖아." 비바람 속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는 정의는 자기만의 세상 속에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잠시 길가의 나무들을 바라봤다. 들뜨고 가벼워지는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해 보니, 사방을 채우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잎사귀 위로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자연의 노래처럼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정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우비 덕분에 젖지도 않고, 이제 조금만 가면 집이야!" 그녀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조금 더 힘을 냈다. "엄마는 지금 저녁 준비하고 있겠지? 아빠는 신문을 보고 있을까?" 정의는 머릿속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자전거를 더 힘차게 밟았다. 그러면서도 가방 속 크로플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손길은 한결같았다. 빗속에서 조금도 무너지지 않는 그녀의 의지는 오히려 그 빗방울이 만들어낸 소리와 함께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길거리는 더욱 어두워졌지만, 정의는 그런 어둠마저 즐겼다. 미처 켜지지 못했던 가로등들도 하나둘씩 마저 켜지며, 그 불빛들이 마치 그녀를 안내해주는 것 같았다. 빗속에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정의는 마치 모험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안그래도 한적한 곳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 거리는 오로지 정의를 위해서만 준비된 어떤 카펫만 같아서, 여기 내려서 있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잡고 우아하게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이게 드레스야.' 페달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자전거 바퀴가 작은 물웅덩이를 지나자 물이 퐁당하고 튀었다. "어이구, 깜짝이야!" 정의는 가볍게 웃으며 외쳤다. "괜찮아, 자전거도 나도 튼튼하니까!" 그녀는 우비의 모자를 단단히 눌러쓰고, 젖은 장갑을 끼고도 손을 꽉 쥐었다. 다시 페달을 밟는 그 모습은 마치 작은 전사가 전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의젓했다. 그녀는 이렇게 작은 사건들도 마치 모험처럼 받아들였다.
이제 정의의 집은 얼마 남지 않았다. 빗속에서 반짝이는 길을 따라, 정의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전거를 계속 몰았다. 빗방울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정의는 오히려 평온함을 느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어." 그녀의 마음속엔 작은 승리감이 차올랐다. 가로등 불빛이 흩어진 빗방울을 반사해 은은하게 빛나는 도로가 마치 신비로운 세상으로 이어진 길처럼 보였다. "비 오는 날도 참 예쁘네." 정의는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빗방울이 무수히 내리며 하얗게 반짝였고, 거대한 자연의 숨결이 느껴졌다.
도로 위로 튕겨지는 물방울 소리가 그녀의 귀에 맑게 울렸다. 바람에 실려 오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정의는 그 비냄새가 참 좋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느껴지는 그 특유의 냄새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비록 날씨는 차갑고 도로는 미끄러웠지만, 정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에 쥔 자전거 핸들을 단단히 잡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길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이 빗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빗방울이 잎사귀 위로 툭툭 떨어지며 나무들이 마치 빛나는 은빛 베일을 두른 것 같았다. 정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무들도 참 멋지다. 이렇게 비를 맞고도 당당하게 서 있네." 빗속에서 뽀얗게 번지는 나무들의 모습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날엔 길도, 나무도, 하늘도 모두 새로운 세상이 된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소리는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고요한 음악처럼 들려왔다. 정의는 자전거 위에서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백색 소음 속에 몸을 맡겼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비는 그녀의 볼에 스치듯 가볍게 닿았고,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적실 때마다 기분 좋은 상쾌함이 몰려왔다. "이런 날, 집에 가면 따뜻한 차를 마셔야겠어. 그리고 가족들과 크로플을 나눠 먹으면 참 좋겠지?" 그녀는 속으로 행복한 상상을 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지만, 정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비와 바람을 뚫고 달리는 이 순간이 오히려 평소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젖은 장갑 사이로 느껴지는 자전거 핸들의 감촉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빗방울도, 모든 것이 평범한 날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정의는 이렇게 생각했다. '비는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해. 집에 가서 엄마가 끓여주는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먹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리고 크로플은 아빠도 좋아하시겠지?' 그녀는 빗속에서 가방 속의 크로플이 무사히 잘 있는지 걱정스러워 손으로 가방을 한번 더 꼭 쥐었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나눌 그 달콤한 순간을 상상하며 마음이 더욱 따뜻해졌다.
길은 여전히 미끄러웠다. 자전거 바퀴가 도로 위의 물웅덩이를 지나칠 때마다 물이 퐁당하고 튀었고, 빗방울은 자꾸만 핸들 위로 떨어져 정의의 손을 차갑게 적셨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작은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가운 감촉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비 오는 날에도 이런 기분일 수 있구나." 정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길가의 상점들은 하나둘씩 불을 끄기 시작했고, 도시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정의는 더 빛났다. 비에 젖어 반짝이는 도로와 나무들이 마치 그녀를 위한 무대처럼 보였고, 그녀는 그 무대 위에서 주인공처럼 달리고 있었다.
나무들이 빗속에서 흔들리며 잎사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머금고 있을 때, 정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저 나무들도 나처럼 이 빗속에서 살아가는 거겠지?" 그녀는 나무들에게 말을 건넸다. 차가운 비와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마치 정의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언젠가 친구와 처음 지하철을 타야 했던 때 약속했던 나무가 저 나무였던 것 같은데. 거리는 때때로, 아니 비마저 적셔지면 더욱 때때로 잊어져 바래진 기억들이 빗소리를 따라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오래전의 기억이 이제야 떠오르는 것은 자전거 덕분일까, 비구름 덕분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직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이 뒤의 크로플 덕분일까.
도로를 따라 쭉 이어진 길을 따라 정의는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길은 여전히 미끄러웠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그녀의 귀를 감쌌고, 그 소리는 그녀를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정의는 고요한 도로 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정의는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비 오는 거리의 한 부분에 적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의 무리였던 그것은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우산 가판대가 되었다. 커다란 파라솔도 설치되어 있는 그 가판대 주변엔 일단 비를 피하기 위해 몸을 피한 사람도 몇 보였고, 우산 장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우산을 팔고 있었다. 장수는 바쁘면서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웠고, 그의 손놀림은 능숙하면서도 가벼웠다. 빗물에 반짝이는 우산들이 하나둘씩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작은 연극처럼 정의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우산이 펼쳐질 때 나는 소리, 그리고 가판대 위에서 스치는 비의 소리가 어우러져 그곳은 작은 활기로 가득 찬 공간처럼 느껴졌다.
정의는 우비를 입은 채 자전거를 천천히 몰며 그 장면을 흘긋 바라보았다.
"저렇게 만나는 우산은 굉장히 멋진 우산이 되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의는 자신의 우비가 더 좋았다. 시선을 작게 내려보니 그녀에게로 떨어지던 빗줄기들은 그녀의 팔을 따라, 어깨를 따라 손을 따라 우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지나쳐 내리고 있었다. 얇은 우비 하나가, 얇디 얇은 우비 한 장이 정의를 지켜주고 있었다. 정의는 지금 보호받고 있었다. 괜찮아.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스며드는 따뜻함이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예상치 못하게 내리는 비도 정의를 멈추게 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가기를 얼마 되지 않아, 자전거 바퀴가 무언가에 걸리며 덜컹거렸다. 뭐지? 뭘까. 정의는 자전거를 멈추고 내렸다. 투둑. 멈추고 내려 서보니, 빗소리는 더욱 맑아져 있었고, 공기는 조금 더 겨울에 가까워져 있었다. 얼마 전 까지 무더웠던 것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서늘해진 것은 비에 적셔진 도시의 한숨인 걸까. 바퀴를 살펴보니 도로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바퀴에 엉켜 있었다. 그 나뭇가지는 비에 젖어 무겁게 축 늘어져 낭창낭창해 있었고, 그 덕분에 바퀴에 잘도 끼어들어 있었다. 정의는 얼굴에 닿는 빗방울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휴, 이런 날엔 이런 일도 있네.” 정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다시 바퀴를 자세히 보았다. 정의의 자전거는 전기자전거지만, 자전거는 자전거이기에 바큇살이 있다. 그 바큇살에 끼어들어 있는 나뭇가지를 정의는 하얀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비바람을 맞아 더욱 하얘진 정의의 손은 친구의 말마따나 꽃처럼 핀 얼음만 같아 보였다. 얼음이면 추위를 느끼려나. 하얀 정의의 손을 보고 말하던 친구의 말을 떠올린 정의는 잠시 웃음을 올렸다. 손에 느껴지는 나뭇가지의 표면은 촉촉했고, 손끝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그녀의 팔을 타고 전해졌다. 손에 묻은 빗물과 나뭇가지에서 나는 흙내음은 그녀를 잠시 다른 세계로 데려가고 있었다. 어느 날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작디 작은 주인공이 물 속에 빠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꺼내는 순간이 떠올랐다. 이걸 뽑아내면 이 자전거도 신이 될까.
그녀는 나뭇가지를 천천히 풀어내며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는 것을 느꼈다. 빗물이 나뭇가지 위에서 뚝뚝 떨어졌고, 그 소리는 마치 자연이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울렸다. “비가 이렇게도 오네. 나무들은 배부르겠다.” 정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뭇가지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럼. 이렇게 잘 되는 걸. 쪼그렸던 몸을 일으키자 상쾌함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화아!" 왠지 소리를 한껏 내봐도 좋을 것 같은 기분. 정의는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퀴가 다시 자유롭게 돌 수 있게 되자, 정의는 고맙다는 듯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자아, 가보자구요!"
정의가 멈춰 서 있던 동안에도 정의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 비가 내리던 거리의 위에 올라 그녀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빗물이 흐르는 도로 위에서 자전거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는 비가 뿌옇게 만든 세상을 통해 작고도 소중한 순간들을 만끽했다. 길가의 나무들은 여전히 빗물에 젖어 나뭇잎을 떨구고 있었고, 그 속에서도 정의는 자신만의 평화를 찾았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 오는 날에도 순간은 멋져. 좋아.”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페달을 밟았다. 길게 이어진 빗방울들이 그녀의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듯했고, 정의는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비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길이 평온해졌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더 이상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전보다 상냥해진 빗줄기를 얹으면서, 정의는 페달에 들어가는 힘을 느긋이 느꼈다. 길 위는 촉촉한 공기들이 가득히 퍼져 있었다. 나무들과 꽃들이 비에 씻겨 맑아진 후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그 상쾌한 냄새는 마치 자연이 깨끗하게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정의는 이 비 오는 날의 모든 풍경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냄새… 정말 평화롭다.” 정의는 코끝에 스치는 향기를 느끼며 혼잣말을 했다.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끝에도 아직 비의 차가움이 남아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비가 조금씩 그쳐가는 동안 정의는 페달을 밟는 속도를 느긋하게 줄이며, 그저 이 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오늘 하루, 자전거를 타고 비 속을 달리는 작은 모험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뭇가지가 바퀴에 걸렸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것을 해결했을 때의 작은 성취감. “나, 꽤 잘했는걸?” 스스로에게 살짝 자랑스러워지며, 자전거를 달리던 모습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모든 소소한 일들이 어쩌면 그녀를 조금씩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조금씩 밝아졌고, 빗줄기도 완전히 멈춰 있었다. 도로 위에 남아 있는 빗물은 반짝이는 작은 거울처럼 햇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했다. 정의는 잠시 멈춰 서서 길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비가 꿈처럼 느껴졌다. 바퀴 자국이 남긴 흔적들이 비에 젖어 희미하게 번져 있었고, 그 위로 맑은 공기가 가득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신기한 날이야.” 정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비 때문에 조금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새로운 기억을 안겨주었다. 나뭇가지와의 작은 전투, 우산 장수의 미소,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았다.
페달을 다시 밟으며 정의는 집으로 향했다. 더 이상 비에 젖지 않은 도로 위에서 자전거는 경쾌하게 굴러갔다. 햇살이 조금씩 얼굴에 닿았고, 그녀는 오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이 감사했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땅의 감촉은 가벼웠다. 그리고 정의는 작은 도전들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자신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정의는 비 오는 날의 작은 모험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로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