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수상록2 22화

못생겼지만 훌륭한 진실

생각에 관한 생각

by 조융한삶





한 여성이 노트북으로 주식 차트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타로카드 앱으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고 있다. 왼손은 합리적 투자자, 오른손은 미신적 존재. 이 분열된 몸짓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동시에 경이로웠다. 가장 정직한 인간의 모습, 이 시대의 자화상.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심리학 논문을 읽으며 인간의 인지편향에 대해 공부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직감에 의존해 점심 메뉴를 정한다. 빅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역설하다가도, 어떤 책을 살지는 표지 디자인으로 판단한다. 과학적 사고를 추구한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감정과 편견의 지배를 받는다.


이 모순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우리는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직관적이다. 세상은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점령했고, 따라서 이 세상도 비합리적으로 돌아간다. 감정적이고 변덕스럽고 무원칙만이 원칙이고, 무의미한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비합리적 이유로 비합리적 결정을 하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사람들.


추하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다.



-



전문가라는 가면 뒤에는 연약하고 혼란스러운 인간이 숨어 있다. 논리적 사고를 자랑하는 감정의 노예들. 존재의 민낯.


현대 신경과학은 이 분열의 생물학적 기원을 드러낸다. 파충류의 뇌에서 시작된 원시적 반응 체계 위에 포유류의 감정 체계가, 그 위에 다시 인간의 논리적 사고 체계가 덧붙여진 삼층 구조. 우리는 공룡과 늑대와 철학자가 한 몸 안에서 치열하게 경합하는 존재다.


시스템 1은 위험을 감지하고 즉각 반응한다. 뱀을 보면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시스템 2는 그 반응을 분석하고 합리화한다. "그것은 밧줄이었다"고 사후 해석한다. 하지만 이미 심장은 뛰었고, 호르몬은 분비되었고, 기억은 형성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시스템 2만을 '진짜 자신'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스템 1이 없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심지어 창조할 수도 없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예술 작품은 논리적 분석 이전에 직감적 도약에서 시작된다.



-



사회는 이 비합리성을 병리화한다. 하지만 진정 '치료'해야 할 것은 비합리성이 아니라, 비합리성에 대한 혐오다. 모순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거부감.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내 안의 여러 목소리들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비논리적 결정, 근거보다 직감, 데이터가 아니라 '느낌'.


가끔 나는 그냥 '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확신한다. 말과 표정, 몸짓 사이의 미세한 불일치를 시스템 1이 포착한다. 그리고 그 직감은 꽤 적중률이 높다.

전문성이란 논리적 사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직감으로 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베테랑 의사의 첫 진단, 숙련된 교사의 학생 파악, 경험 많은 상담사의 직감적 개입. 이 모든 것들이 논리를 넘어선 지혜의 발현이다.



-



'이성적 시민'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 유권자들은 감정으로 투표하고, 편견으로 판단하고, 직감으로 선택한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체제보다 인간적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행동경제학이 보여주 경제 주체들은 비합리적이다. 손실 회피 편향, 확증 편향, 군집 심리에 휘둘린다. 그런데도 시장은 돌아간다. 개별적 비합리성들이 집합적으로는 어떤 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비합리성의 역설. 개인은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성들이 모여 전체적으로는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각자의 편견과 직감과 감정이 서로 상쇄되고 보완되면서 집단 지성을 형성한다.


물론 비합리성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집단 히스테리, 마녀사냥, 인종차별, 전쟁. 인류 역사의 가장 끔찍한 순간들이 모두 비합리적 감정의 폭주에서 비롯되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중독, 폭력, 자해와 같은 자기파괴적 행동들이 비합리적 충동에서 나온다.



-



못생겼지만 훌륭한 진실. 우리는 모두 분열되어 있고, 어딘가 뒤틀리고 비틀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하다. 예측 불가능하고, 신비롭고, 재미있고, 살아볼 만하다.


핵심은 의식성이다. 구별과 균형. 창조적 비합리성과 파괴적 비합리성을 구별하고, 직감과 편견을 구별하고, 감정과 감정의 노예 상태를 구별해야 한다. 내가 지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 비합리성의 기원과 방향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와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성찰하는 것. 그 모순된 순간들을 사랑하는 것.


분열된 채로 온전하게, 불완전한 채로 완전하게.

keyword
이전 21화여행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