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궤도

by 조융한삶





친구가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주식 차트의 붉은 선이 급격히 하강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현대인의 행복이 얼마나 취약한 궤도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읽었다. 우리의 감정은 시장의 변동성에 연동되어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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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침마다 숫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통장 잔고, 주식 수익률, SNS 좋아요 수. 이 디지털 숫자들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 마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듯 이 수치들을 점검하며,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살아있음'일까?


물리학의 관성. 외력이 없으면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한다. 우리의 행복 추구도 이와 같다. 한번 시작된 소유 욕망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얻을수록 더 많은 것이 필요해진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업가는 끊임없이 별을 세고 또 센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니까." 그때는 우스꽝스럽게 여겼던 그 장면이 이제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을 세고 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진지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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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명상 앱에 연 구독료를 결제하며 나는 웃었다. 마음의 평화마저 구독 서비스가 된 시대. 월 9,900원으로 내면의 고요를 렌탈하려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움 속에서 더 깊은 절망을 읽었다. 우리는 평온조차 소비하려 한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시간을 식민지화했다. 과거는 그리움과 후회의 저장소가 되고, 미래는 불안과 계획의 영토가 된다. 현재는 그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통로일 뿐이다. 마치 공항의 환승 구역처럼, 현재는 진짜 목적지가 아닌 임시 체류지가 되었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이 우리 삶의 주어가 되었다. 언젠가는 집을 살 것이고, 언젠가는 여행을 갈 것이고,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 기차처럼 시간표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플랫폼에서 기다리다가 늙어간다.


친구가 말했다.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 생산성이라는 강박이 휴식마저 죄책감으로 만들어버린 시대.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느낀다.


인간관계마저 손익계산서로 평가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도 ROI를 계산한다. 이 사람과의 만남이 내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가? 사랑마저 매칭 알고리즘의 영역이 되었다. 키, 학력, 연봉, 외모라는 변수들을 입력하면 최적의 파트너를 찾아준다는 앱들. 하지만 알고리즘은 가슴 떨림의 주파수를 측정할 수 없다.


"사랑하되 상처받지 말고, 주되 손해 보지 말고." 이런 조건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 아니면 정교한 거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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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풍요로움은 역설적으로 비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비움조차 사치가 된 시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생산적이지 않을 자유, 쓸모없을 용기. 이런 것들이 이제는 특권이 되었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올까? 침묵하는 순간 들려오는 내면의 소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고요함을 견디지 못한다.


자기 직전, 모든 전자기기가 꺼진 방에서 진짜 어둠을 마주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내 심장 소리를 듣는다. 기계의 신호음이 아닌 생명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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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물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시스템의 중력장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궤도를 그을 수는 있다. 나비 효과처럼, 작은 변화가 전체를 바꿀 수 있다. 몇 가지 작은 실험들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침실에 두지 않기. 아침에 주식 시세 확인하지 않기. SNS 좋아요 수 세지 않기. 이런 미세한 저항들이 쌓여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유일까, 포기일까, 아니면 다른 종류의 용기였을까. 확실한 건 예전보다 더 자주 웃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조건이 없다.


행복을 정의하고 측정하려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어 본래의 가능성을 잃는다.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역설. 마치 수면과 같다. 잠들려고 노력할수록 잠은 멀어지고, 잠에 대한 생각을 놓을 때 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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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을 산책하며 매번 깨닫는다. 행복은 이미 여기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 발걸음의 규칙적인 리듬. 이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소유할 수도 없고 저장할 수도 없지만, 바로 지금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우리는 행복을 미래의 보상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현재의 선물이다. 포장지도 없고 리본도 없는, 그저 이 순간이라는 이름의 선물.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두 손을 비워야 한다. 다른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받을 수 없으니까.


행복의 궤도는 직선이 아니다. 그것은 나선형이고, 때로는 역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움직임이 우리만의 우주를 그려낸다. 완벽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없어도, 그것이 우리의 궤도다. 그리고 그 궤도 위에서 우리는 이미 행복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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