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by 조융한삶





고도는 오지 않는다. 베케트의 무대에서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 기다림을 게임으로 정교하게 포장했을 뿐이다. 나는 이제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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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켜고 오늘의 퀘스트를 확인한다. 독서 미션, 운동 루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매일 반복되는 이 작은 의식들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기 위한 장치들. 나는 이 장치들을 사랑한다.


현대의 기다림은 더욱 정교해졌다. 진행률 표시줄이 있고, 알림음이 있고, 즉석 만족이 있다. 베케트의 적막한 무대는 이제 게임의 로딩 화면이 되었다. 우리는 기다림 자체를 견디기보다는 기다림을 소비한다.


시지프스와 게이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시지프스는 바위를 밀고, 게이머는 몬스터를 잡는다. 둘 다 끝없는 반복이다. 차이가 있다면 게이머에게는 숫자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레벨 31에서 32로. 그러나 그 증가가 존재의 조건을 바꾸지는 못한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반복을 사랑해야 한다. 게이머가 어제와 같은 던전에 들어설 때, 그는 바로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의미 없는 반복에 대한 온전한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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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이라는 현대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더 나은 나, 성장하는 나, 완성된 나.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형태의 고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논리학을 배우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난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기다림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장 담론은 우리에게 끝없는 개선을 약속한다. 하지만 아침에 눈뜰 때 느끼는 삶의 무게는 스킬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교해진 자각으로 인해 더 무거워질 뿐이다. 나는 이 무게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이 존재의 조건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가 실시간으로 재연되고 있다. 끝없이 스크롤되는 피드, 무한 반복되는 밈들, 같은 주제에 대한 순환하는 논쟁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그 소음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유지한다. 나는 이 환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또 다른 게임을 찾는다. 삶이라는 게임이 지루하니 다른 게임을 하고, 그것마저 지루해지면 게임 속 미니게임을 한다. 도피의 재귀 구조.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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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고백한다. 나는 이 모든 부조리를 받아들인다.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게임이 진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성장이라는 것이 환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다린다. 퀘스트를 수행하고, 루틴을 반복하고, 사람들과 만난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기다림의 기술이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정확한 인식에 기반한 기다림.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기다리는 것.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플레이하는 것.


나는 시지프스의 행복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시지프스의 지속을 믿는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행위 자체가 존재의 증명이라는 것을.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음을 견디는 것이 진짜 기술이라는 것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며 대화한다. 그 대화가 무의미할지라도, 말하는 한 존재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한, 루틴을 반복하는 한, 나는 존재한다.


삶은 완주해야 할 마라톤이 아니다. 끝까지 연주해야 할 긴 곡이다. 가장 빨리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음표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연주자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진짜 기다림의 달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삶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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