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시골집은 수리비가 집값만큼 든다
시골집을 계약한 후 리모델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업체에 견적을 요청했는데 세상 물정을 몰라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집이 크다 보니 수리비는 집값과 맞먹을 정도였다.
결국 인건비가 가장 저렴한 업체를 선택해 직영 공사로 진행하기로 했다. 흔히들 집을 짓다 보면 10년은 늙는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혹사되며 흰머리가 늘어갔다.
공사 도중 요청 사항이 무시되거나 마음대로 진행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타일 시공을 맡겼을 때 이런 시공하기 힘든 지랄 같은 타일을 골랐냐고 했던 순간은 서러웠다. 덩치 큰 남자였어도 이렇게 함부로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저 상대방의 무례함일 뿐이라며 공사를 이어갔다.
첫 집인 만큼 인테리어에 정성을 쏟았다. 공사 내내 현장에 머물며 직접 참여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단열이었다. 제주 시골집에서 발가락이 동창에 걸릴 정도로 추위에 시달렸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도시가스를 사용할 수 없고 기름 난방은 겨울철에 도시보다 3배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 그 고생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단열에 철저히 대비했다.
낡고 오래된 샷시는 단열 유리 이중창으로 교체했고 몰딩도 손봤다. 노란 장판과 노란 몰딩은 모두 걷어내고 시멘트 무늬 장판을 깔자 집이 마치 스튜디오처럼 깔끔하게 변했다. 조명도 모두 교체했으며 격자무늬 문과 화장실, 현관 중문을 제외한 모든 문을 철거했다. 덕분에 죽어 있던 공간이 미니 거실로 변신했다. 집 중앙에 있던 나무 몰딩은 빈티지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살렸다.
방은 총 세 개였는데 하나는 작업실로, 나머지 두 개는 벽을 터서 하나의 큰 공간으로 확장했다. 그 안에 드레스룸도 추가했다. 주방의 창문은 막아 선반으로 활용했고 한쪽 벽에는 직접 파벽돌 시공을 해 포인트를 주었다. 도배를 사장님이 시골에서 이런 인테리어는 처음 본다며 유튜버냐 묻기도 했다.
시골집은 아파트나 도시 주택보다 출입문이 많은데 이 집에는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문을 막는 데도 추가 비용이 들었다. 예산을 초과하는 일은 흔했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오른쪽 발가락에 마비가 왔다
서울에 살 때는 형광등 하나도 갈아본 적 없었지만 시골에서는 못하는 일이 없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나선 일이 많았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것도 많았다. 하지만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철거 후 깨진 블록을 혼자 옮기기로 했다. 사람을 쓰지 않고 직접 처리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신발을 벗는데 오른쪽 발가락 두 개에 감각이 없었다. 급히 한의원을 찾았고 침대에 엎드려 보라 하며 의사는 허리 아래쪽 척추를 누렀는데 너무 아파서 "악!"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허리 디스크가 찢어져 신경이 눌린 겁니다. 그 영향으로 발가락 감각이 없어진 거예요.”
요령 없이 무리하다 결국 디스크가 손상된 것이었다. 하루 인건비를 아끼려다 백만 원 가까운 추나 치료를 받아야 했고 다행히 발가락 감각은 금세 돌아왔지만 허리 통증은 요가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벽지 제거, 곰팡이 청소, 페인트칠, 자재 나르기, 데크와 단열재 작업, 폼 쏘기, 피스 박기, 파벽돌 시공, 자재 구입 등 셀 수 없는 작업을 직접 했다. 시골집은 손볼 일이 끊이지 않는다. 매번 사람을 부르면 비용이 감당되지 않아 조금씩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리모델링을 마친 후에도 창고 작업실과 카페 인테리어를 도전하면서 절단기, 전기 타카, 충전 타카 같은 공구를 사서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목재상에서 나무를 주문하고 간단한 작업은 혼자 처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완성된 공간을 바라볼 때마다 내 선택을 긍정하게 되지만 이제는 공사가 정말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