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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지 Dec 27. 2024

게으른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골

2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잡초

처음 귀촌했을 때 집 앞에 난 잡초 하나가 그렇게 초록초록하고 싱그럽게 보일 수 없었다. 너무 예뻐서 차마 뽑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돌멩이를 주워 주위에 동그랗게 둘러주며 작은 정원을 만든 기분이 들었다. 지나다니던 동네 어르신들은 지저분하니 뽑으라 했지만 얘도 생명인데 내가 뭐라고 죽이나 싶어 그냥 두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풀 뽑기 달인이 되었다. 


농가주택에 산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닌데 관리하며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삶이다. 집은 그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으로 게으른 자는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여름철은 기온이 높고 습한 날씨 탓에 잠깐이라도 손을 놓으면 마당은 순식간에 정글로 변한다. 지금은 하루 30분씩 시간을 내 풀을 뽑고 정원을 관리하지만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카페 운영으로 바쁘다 보니 정원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마당이 무성한 풀숲으로 변했던 적도 있었다.


한 번은 풀을 베다가 돌틈에서 작은 뱀이 기어 나온 적이 있었다. 시골에 흔한 독 없는 누룩뱀 새끼였지만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무성해진 풀과 돌이 숨기에 딱 좋았을 것이다. 담장너머엔 커다란 자라가 느릿느릿 기어가던 날도 있었고 두더지가 정원 여기저기 굴을 파놓았던 날도 있었다.

서울에 살 땐 1평만이라도 내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는데 막상 정원이 생기니 어떻게 가꿔야 할지 막막했고 초보자의 열정으로 봄에 꽃모종을 10만 원어치나 사서 심었지만 티도 나지 않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작은 나무 묘목이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보살핌이 필요한데 직접 나무를 심고 키워보니 밖에서 커다란 나무를 만날 때마다 그저 경이롭고 그 앞에서 겸손해진다.


폭우에 마당이 잠기다

이 집에 이사한 첫해 여름 국지성 호우로 하늘에서 물폭탄이 떨어졌다. 시골살이는 익숙했지만 제주는 화산섬이라 물 빠짐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마당에는 배수구가 세 군데 있었지만 두 곳이 빠르게 낙엽으로 막히는 바람에 물이 차오르며 절반이 연못으로 변했다. 발목까지 물에 잠긴 마당을 보며 허둥지둥 나가 낙엽을 치우자 금세 빠져나갔다. 평소에 자주 쓸어두었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결국 게으름이 부른 참사였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집은 자신을 지켜주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압박하는 곳이 되고 만다. 집을 관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귀찮은데 단순히 공간을 치우고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마당도 어지럽다.

물에 잠긴 마당을 보며 마음까지 눅눅해진 것 같았고 마치 물먹은 솜이불처럼 무겁고 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집도 마음도 돌보고 가꾸는 자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집은 살아있다

가끔 집은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고장이 나듯 시골집도 끊임없이 수리할 곳이 생긴다. 숨도 쉬게 해 주고 고장 나면 고쳐주고 청소하고 칠도 해야 하는데 잔잔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그중 하나가 옥상에 있는 물 빠지는 배수구인데 낙엽과 먼지가 쌓여 막히는 바람에 물이 고인 적도 있었다. 급히 사람을 불러 고압 세척기로 세척하고 방수 작업을 했다. 어느 날은 보일러가 고장이 나고 또 어느 날은 대문이 떨어진다. 


리틀포레스트를 꿈꾸며 귀촌한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바로 정원 관리와 집수리가 예상보다 훨씬 힘든 노동이라는 것이다. 불편하고 고된 일이지만 식물들을 심고 돌보며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그 노동이 생각보다 크게 힘들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비결은 매일 조금씩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정리를 하려고 하면 줄기가 질겨져 베어지지도 않고 그만큼 더 고된 일이 되고 만다.

전원생활을 좀 더 수월하게 하려면 신축 건물로 이사해 마당을 시멘트로 하고 최소한의 화단과 텃밭만 남기는 방법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초록 잔디로 가득 찬 아름다운 집을 꿈꾸지만 잔디도 자라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그 사이 잡초가 자라기 때문에 매일 풀을 뽑지 않으면 잡초가 잔디를 이겨 결국 잡초밭이 되어버린다. 경험상 나는 잔디를 걷어내게 되었다.


집은 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벽의 갈라짐을 메우고 정원의 잡초를 뽑는 매 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결국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조금씩 더 나아지고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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