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어디에서 살아야 하지?
어느덧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집값이 치솟은 제주에서는 집을 구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육지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가진 돈으로는 작은 시골집밖에 살 수 없어서 따뜻한 남쪽을 목표로 삼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무안, 광주, 여수 공항을 오가며 집을 찾아 나섰다.
집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수에서 집을 보러 갔다가 버스를 잘못 내려 논두렁만 있는 시골에 떨어졌다. 핸드폰마저 꺼져 현재 위치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막막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저 멀리 논두렁 너머 작은 마을이 보였다. 간신히 마을 회관을 찾아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을지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제가 여행 중에 길을 잃었는데요, 핸드폰이 꺼져서 충전 좀 할 수 있을까요?”
“어머 세상이 참 좋아졌네, 여자가 혼자 여행을 다니고! 들어와요. 난 태어나서 여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
“여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차 타면 금방 인근 지역에라도 갈 수 있잖아요!”
“멀미가 심해서 차를 못 타. 그래서 평생 여기서만 살았어.”
어르신과의 대화 속에서 이분에게 내가 얼마나 낯선 존재일지 세상의 빠른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어르신에게도 세상의 속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문득, 시간이 흘러 먼 훗날의 누군가에게 세상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각자의 속도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며 이어져간다.
집주인 마음은 갈대
집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 집주인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집을 팔겠다고 내놓고도 전화를 하면 매매를 철회하는 일이 흔했다. 한 번은 돌산도에 리모델링된 시골집을 어렵게 찾아보러 갔다. 생각보다 집은 깔끔했고 가격도 저렴해 마음에 들었는데 시간이 늦어 다음 날 아침 법무사 앞에서 만나 계약을 하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가 들뜬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집 사진을 보내며 자랑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 잠시 후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해요. 누가 매매가보다 더 높은 금액에 산다고 해서 집을 팔 수 없게 됐어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잘 곳 없으면 집에서 자고 가라고까지 했던 터라 더 실망스러웠다.
반복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경제적 제약 속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당시 계약금을 바로 넣겠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구두로 이야기만 나누고 온 것이 문제였다. 그 집은 나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다시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보성에 가다
2017년 보성에 집을 구하러 갔다. 사람들은 흔히 보성을 녹차밭으로만 떠올리지만 바다와 강, 호수, 계곡,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었다. 특히 차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집값이 저렴했다. 토지 120평에 17평짜리 작은 집이 매매가 1,700만 원에 나왔다고 해서 기대를 품고 배를 타고 녹동으로 향했다.
고흥에 있는 부동산으로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부동산 사장님께서 중간 터미널까지 픽업을 오시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리러 오던 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119에 실려간 것이었다. 상대방 운전자 잘못으로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른 날 올걸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후 사장님은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무사히 퇴원하셨고 우리는 지금도 다정한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집을 계약한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을 느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집이 너무 작아 짐을 둘 공간도, 작업 공간도 부족했다. 증축이나 별채를 짓기 위해 업체를 불러 견적을 냈더니, 수리비용이 집값의 두 배에 달하며 현실의 벽에 또 한 번 부딪혔다.
그러다 제주에 살던 친구가 보성에 집을 알아보고 싶다며 함께 방문하게 되었고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가족이 큰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 공간들이 눈에 들어왔고 창고와 별채까지 있어 작업실과 명상실로 활용하기 좋았다. 첫 번째 집을 팔고 더 큰 이 집으로 다시 계약했다. (친구는 다른 집을 계약했다)
하지만 이사를 앞두고 리모델링 견적을 보러 다시 집에 갔을 때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집은 마을 맨 앞집이었다. 초록 논이 펼쳐지고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나무는 모두 잘려 사라지고 집 앞에는 신축 주택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축주는 다름 아닌 집을 팔았던 전 주인이었다. 새로 신축을 짓겠다는 말을 했던 그곳이 바로 우리 집 앞이었다니. 뒤통수를 맞았지만 이미 제주의 집과 짐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한 상황이라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었다.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