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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지 Dec 20. 2024

라오스 할머니의 개구리 수프

1부: 회사를 그만둬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콩로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했던 부부가 놀러 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오스에 동굴 앞으로 강이 흐르는 곳이 있는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추천했다. 지역 이름만 듣고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렇게 네팔에서 돌아온 지 세 달 만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라오스로 떠났다. 수도 비엔티엔은 낮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폭염이었다. 여행사에 들러 콩로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다음 날 아침 숙소로 픽업 온 썽태우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마주한 버스는 우리나라라면 폐차될 수준의 차량이었다. 에어컨은 입으로 후~ 부는 듯 약한 바람만 나왔고, 의자는 자꾸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외국인은 나뿐이었고 날씨는 뜨거워 핸드폰이 열을 받아 전원이 나가버렸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막막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도에서 9시간이나 떨어진 오지였다.


늦은 밤, 버스는 작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큰 식당과 몇 개의 숙소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고 앞에 보이는 숙소에 들어갔다. 배가 고파 숙소에서 밥을 시켰지만, 두 입을 먹기도 전에 천둥번개와 함께 스콜이 쏟아져 비를 피해 방으로 돌아왔고 핸드폰을 켜보니 다행히 전원이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창밖을 보니 지난밤의 폭우는 온데간데없고. 쨍쨍한 햇볕 아래 화창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숙소 주인은 강이 있는 동굴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뜨거운 날씨 속, 작은 동굴 앞에서 맑은 강물이 흘러나오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뜨거운 햇볕 아래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영복도 없었지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강물에 몸을 담갔다.


시원한 물속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며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고,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숲,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여기가 지상낙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일 동안 매일 수영하며 보냈다. 이 동굴은 당시 개방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굴 너머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조금 망설였지만,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오지에서 오지로

콩로 동굴에서 작은 나룻배를 타고 넘어가야 했는데, 배가 이미 마감되었다. 숙소를 체크아웃한 상태라 어쩔 줄 몰라하던 찰나, 동굴 너머 마을에 사는 한 청년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함께 탈 수 있게 되었다. 동굴 안에서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암흑 속을 항해하는 동안 작은 랜턴 하나에 의지했는데, 고요하고 깊은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약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고 동굴을 빠져나오자마자 눈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정글 속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마을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을까지는 약 2킬로미터의 흙길을 걸어야 했다. 그 길에서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수만 마리의 흰나비가 날아올랐다. 나비 떼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 장면은 눈과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흙길을 따라 걷다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함께 배를 타고 왔던 청년은 친절하게 홈스테이 할 수 있는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현지인 집에서 살아보기

인도 푸시카르 사막에서 침낭만 덮고 모래 위에서 잤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라오스 전통 집에서의 홈스테이였다. 그래도 개인실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기대는 착각이었다. 집은 벽이 뻥 뚫려 있었고 주인할머니는 2층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모기장과 이불을 가져와 한쪽에 펼쳐주었다.


"아, 여기가 내 자리구나!"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였는데 현지 유심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핸드폰은 거의 터지지 않았다. 전기와 수도는 없었고, 발전기를 돌려 밤에만 잠깐 전기를 쓸 수 있었다. 샤워는 마을 시냇가에서 해야 했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부잣집이라 푸세식이지만 변기가 있화장실이 건물 안에 있었다. 화장실 옆 작은 욕조에 담긴 물로 세수와 양치를 해야 했는데 물에는 항상 벌레가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인도 여행에서 단련된 덕분인지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할머니의 시골 밥상

식사 시간이 되었고 야채가 들어간 국과 시냇가에서 볼 수 있는 우렁이를 삶은 요리가 나왔다. 더운 기후 탓인지 간이 짰고, 웬만하면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지만 음식은 조금 입맛에 맞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국이 나왔다. 처음에는 메추리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개구리였다. 깜짝 놀랐지만 안 먹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도전하기로 한다. 개구리는 닭고기와 맛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입 물었는데, 비릿한 맛이 올라오고 물컹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맛은 분명 삶은 개구리였다. 표정 관리를 잘 못했던 건지 이후부터 밥상에 작은 사이즈의 라오스 라면이 같이 올라왔다. 밥을 잘 먹여야 한다는 마음은 전 세계 할머니들이 똑같았다. 


낮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집주인아저씨가 라오스 위스키를 한잔 권했고 마을 아이들도 함께 있는 안전한 분위기라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안주라며 육포 같은 것과 벌레 볶음을 내밀었다. 벌레는 화장실 물에 떠 있거나 벽에 붙어 있던, 그 까맣고 동그란 생명체였다. 이 정도면 거절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또 도전하고 말았다.

혹시 고소한 맛이 날까 기대하며 한입에 넣고 씹으니 나무껍질을 흙에 비벼 구운 듯한 맛이 났다. 



직조

이 마을은 직조를 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집은 2층 구조로, 1층 그늘 아래에서 여자들이 베틀을 사용해 직물을 짜고 있었다. 집집마다 개성을 담은 직물들은 너무 예뻤고, 방비엥이나 비엔티엔 같은 도시로 가면 가격이 열 배는 뛸 것 같았다. 직물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이곳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어르신들은 라오스 글자를 읽지 못했기에 번역기도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바디랭귀지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직조를 가리키며 손짓으로 "이거 사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직조를 짜던 분은 흙바닥에 숫자를 써 금액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몇 집을 다니며 기념으로 하나씩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그새 소문이 났는지 홈스테이를 제공해 주던 집의 며느리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장에서 손수 만든 직물을 꺼내 보여주었다. 예쁜 것도 개를 골랐는데, 가장 예쁜 직물 하나는 딸에게 주려고 만들어둔 것이라며 팔 수 없다고 했고 나머지 하나를 구입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연 마을 아이들 때문이었다. 외국인을 거의 본 적 없는 이 오지의 아이들에게 혼자온 여행자는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처음 만난 건 한낮의 폭염 속 냇가였다. 동굴 너머의 넓은 강과는 달리 이곳엔 작은 시냇가만 있었고, 폭염에 물은 미지근한 흙탕물이었지만 이 물이라도 없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며 근처로 모여들었다.

아이들과 물장구도 치고 숨 참기 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후 온 동네 아이들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알려줬지만, 발음이 어려웠는지 그들은 나를 "유찌"라고 불렀다. "유찌! 유찌!" 하며 망고를 따다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작은 상자 안에 예쁜 꽃 한 송이를 담아 주기도 했다. 또 어떤 아이는 실에 자신이 좋아하는 단추를 꿰어 손목에 팔찌를 만들어주었다.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물총을 쏘자, 여자아이들이 대신 나서서 혼내주는 모습도 귀여웠다. 손을 잡고 함께 냇가에 놀러 가던 시간들이 행복했다. 

이 낯선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나를 돕거나 대접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 노는 것 자체를 기뻐했다. 


훌쩍 자랐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사랑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걸어가는 길이 따뜻한 빛으로 비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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