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날 멀리서 놀러 온 친구가 물었다.
"여기서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이 누구야?"
"우리 주지스님! 내 베프야."
농담 같았지만 사실이었다. 가장 자주 만나고 속 이야기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스님이었다. 대답에 친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스님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제주에서 보성으로 귀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랜 공방 작업과 집 공사로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고 몸과 마음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요가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떠올랐다. 마침 지인이 한 사찰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해 주었고 망설임 없이 찾아갔다. 깊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의 절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멀리서 한 노스님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저… 요가와 명상을 배우고 싶어서요."
절에서 수련을 시작한 첫날, 그동안 얼마나 몸을 혹사하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오른쪽 팔은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았고 허리는 추나치료를 마쳤지만 여전히 뻐근했다. 다른 도반들은 능숙하게 동작을 해냈지만 간단한 자세조차 따라가기 힘들었다. 몸이 회복되고 유연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실감했다.
수련 시간보다 늘 일찍 도착해 주지스님과 차담을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명상을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조심스레 꺼냈는데 그 순간 스님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침 하안거가 시작될 무렵이라 수련도 자연스럽게 한층 깊어졌고 저녁 6시에 시작된 수련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요가만 두 시간을 진행했는데 수련이 끝날 때마다 온몸에서 곡소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누구를 가르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수련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과정에는 스님의 큰 그림이 있었다. 스님은 기술적인 수행 이상의 것을 가르치셨는데 매 순간 수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주셨다.
수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더 많이 배우게 되니, 이제 안내자로 첫걸음을 내디뎌 보거라."
명상을 안내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방법을 전수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수련을 새로운 시각에서 돌아보고 더 깊이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그때가 명상을 시작한 지 6~7년쯤 되었을 때였다. 처음 안내자로 서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한 걸음씩 길을 찾아갔다. 명상 뇌과학이나 해외 콘퍼런스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해 드리면 흥미롭게 경청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이렇게 함께 공부하며 지혜를 얻고 정진하며 나아가는 거란다."
수행은 끝을 정해둔 목표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여정이다. 주지스님의 말씀은 단순히 명상을 안내하라는 의미를 넘어 삶의 방식과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안내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선생님이나 지도자가 아닌 먼저 수행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함께 수행의 길을 걷는 도반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나니 안내자로서의 길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끄는 일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며 서로를 비추는 과정이었다.
스님은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셨다. 두부 한 모라도 공양간의 음식을 나누어 주셨고 낡은 옷은 꿰매고 또 꿰매며 입으셨다. 누군가 선물로 좋은 걸 드리면 소중히 간직하셨다가 꺼내 나눠주셨다.
명상수행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시기에는 종교는 지혜를 찾아가기 위한 방편일 뿐, 아무것도 아니니 이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주기도 하셨고, 함께 수련하던 도반들 중 일부는 천주교 신자였는데 토요일 수련이 끝나면 내일 성당 가서 미사 잘 드리라고 격려하며 그들의 신앙을 존중하셨다. 또 일에 욕심을 내며 이런저런 계획을 이야기할 때면 늘 말씀하셨다.
"인간으로서 자연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화두로 삼아야 한다."
이 말은 삶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계속 돌아보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 후, 전라남도 생태관광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자체와 함께 바다와 숲에서 생태치유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깊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개인 지도, 교육청 교직원 연수, 정신건강복지센터와의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명상을 나누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지하게 걸어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진실되게 살아가는지에 있다.
이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바르게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진의 길을 걷고자 한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온기와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