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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지 Dec 31. 2024

50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시골 카페

2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제주에서 보성으로 두 번째 귀촌을 결심하며 창고를 리모델링해 공방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주에서 제작하던 소품들은 육지에서의 시장 환경에 맞지 않았고 가격 책정의 실수로 납품처마저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외진 시골에서는 관광객의 유입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읍내에 공방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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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구입과 리모델링을 위해 대출까지 받으며 이미 빈털터리가 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우선 가게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지만 시골은 부동산에 매물이 많지 않았다. 임대라고 종이에 적혀 대충 붙어 있는 곳들을 일일이 찾아다녔고 벌교 읍내 골목길을 수없이 돌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은 오래되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였고 예상보다 임대료가 높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기대와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삼거리에 위치한 세탁소 옆 낡은 상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아 있었고 시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내부는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모습이었다. 임대라고 적힌 표시도 없었지만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혹시 옆 가게 누가 쓰고 있는 걸까요?”
“지금 누가 임대해서 쓰긴 하는데, 거긴 왜?”
“작은 공방을 하려고 하는데 혹시 비어 있으면 임대 가능할까 해서 여쭤봤어요.”
“그래? 계약이 끝날 때가 됐을 텐데 잠깐만, 주인한테 전화해 볼게.”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그 자리에서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를 이어가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며칠 뒤 계약이 끝나는데, 임대 가능하다네!” 그렇게 운 좋게 8평짜리 작은 상가를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3만 원이라는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다. 계약을 하고 나서야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가게를 둘러보니 벽은 엉망이었고 바닥은 울퉁불퉁했다. 고민 끝에 공방 대신 소품샵과 카페를 겸해 운영하면 좀 더 사람들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직접 만든 소품을 팔고 간단한 커피와 음료를 내놓으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올 것 같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가게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인테리어 비용은 최소한으로 잡아야 했고 무엇을 우선으로 할지도 정해야 했다. 



셀프 인테리어

가게는 약 8평 정도 되는 긴 직사각형 매장이었다. 작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한정된 예산 500만 원 안에서 해결해야 해서 시골의 한적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빈티지한 공간을 콘셉트로 잡고 최대한 기존 구조를 활용하기로 했다.

철거를 시작했을 때 안쪽 천장을 툭툭 치자마자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지붕은 멀쩡했지만 중간 단열층으로 덧대어 놓은 천장이 오래되고 약해져 있던 탓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드러난 나무 서까래를 보고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서까래를 살려 내부를 한옥 카페처럼 꾸미면 자연스러운 멋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리모델링 때 남았던 타일과 자재들을 꺼내어 재활용했다. 타일을 사용해 바를 만들고 나무로 자연스러운 테이블과 진열장을 제작했다. 조명은 은은한 색감으로 배치하여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벽 한쪽에는 진열장을 달아 소품을 진열했고 안쪽과 입구 쪽에는 손님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아담한 자리를 마련했다. 공간은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으로 점점 완성되어 갔다.

가게 입구에는 룽따(티베트 깃발)를 걸어 두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목욕탕에 점집이 생겼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손님이 이야기해 주어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속에서 작은 가게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꼬막라테 맛집

비싼 커피 머신을 살 여유도 없고 소품샵이 주력이라 100만 원대의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시작했다. 메뉴는 단출하게 구성했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독특한 메뉴를 개발했다. 꼬막 모양 틀에 에스프레소를 얼려 연유와 함께 마시는 꼬막라테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로 만들어 본 것이었는데 이 메뉴가 카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느 날 오후 한산한 오후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 카메라를 든 여자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생방송 투데이에서 나왔어요. 

 가게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여서 촬영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을까요?"
"아... 네! 물론이에요"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작은 설렘이 일었다. 촬영팀은 카페 곳곳을 둘러보며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 대표 메뉴가 뭐예요?"
"녹차라테랑 짜이예요. 꼬막라테라고 숨겨진 메뉴 하나 더 있는데 제가 서비스로 만들어 드릴게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촬영팀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곧 카메라가 켜지고 꼬막라테를 만드는 과정이 화면에 담겼다. 꼬막 모양의 얼음틀에서 꺼낸 에스프레소 얼음이 컵에 들어가고 그 위에 진한 연유와 우유가 천천히 부어지는 모습이 촬영됐다.

이 메뉴는 방송을 통해 그대로 소개되었고 "꼬막라테가 뭔지 궁금해서 왔어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났고 벌교 오면 꼬막라테 마셔봐야 한다며 관광버스로도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방송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점차 꼬막라테는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았고 SNS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졌다. 나중에는 꼬막 타르트도 만들어서 세트 메뉴도 구성하고 소품샵을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했지만 카페 손님이 훨씬 많아지며 예상치 못했던 방송 출연 덕분에 작은 카페는 동네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성공보다 여유가 먼저

어느 날 방송 섭외 전화가 왔다. <성공보다 여유가 먼저>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보성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시골에서의 삶은 어떤지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제주에서는 방송 섭외가 와도 심신이 지쳐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동안 회복이 되었는지 두 번째 방송까지 촬영을 하기로 했다. 

시골에서의 삶과 여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자분과 드림캐쳐 만들기 클래스까지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출연료도 받았고 방송 후에 녹화본 CD도 보내주셨다.

그때 진정으로 성공보다 여유가 먼저라는 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주 5일 12시에 문을 열고 6시에 문을 닫았는데 여유를 갖고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을 하지는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6시에 명상 수련을 하러 가기 때문에 5시에 문을 닫기도 했다. 동네 아주머니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여기는 장사를 하는 거냐, 주중에 쉬지 말라며 소리치고 간 적도 있었다. (카페 손님도 아니었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돈을 벌려면 쉬는 날도 없이 아침 일찍 열고 밤늦게까지 운영했어야 했겠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그저 전투적으로 일했고 제주에서도 매일 새벽까지 공방일을 하느라 내면의 여유와 행복은 잊고 살았다. 제주에서 더 시골로 온 이유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해 사람들과의 교감을 이어가고 카페와 클래스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따뜻한 에너지와 소통을 나눌 수 있다. 시골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며 여유를 찾는 일이 더 행복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여기서 이 노래가 왜 나와?

카페에서 주로 인도 음악이나 만트라를 틀어 놓았다. 평소 인도 음악을 좋아해서 유튜브에서 자주 듣곤 했고 그 음악이 마음에 들어 가게에서 틀어 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인도에서 일하는 한 손님이 명절을 맞아 벌교에 계신 할머니 댁에 놀러 왔다가 우리 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그 손님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나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이 노래 어떻게 아세요??"

"아, 평소에 인도 음악을 즐겨 듣는데 유튜브에서 듣다가 좋아서 틀어봤어요."

"세상에! 이 노래 부른 가수,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손님은 인도에 있는 그 가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음악을 듣고 매우 신기해하며 반가워했고 카페에서 매일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치 팬미팅처럼 따뜻하고 특별한 순간이었고 세상이 좁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혼자 있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8평의 작은 가게가 북적거릴 정도로 손님들로 가득 찰 때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손님들은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안정된 시간이 오면 고질병처럼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이게 내가 진정 원하던 삶일까?'


2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면서 그림 작업은 잠시 미뤄 두어야 했다.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바빠 시즌마다 신메뉴를 개발하느라 원했던 작업하는 삶은 놓치고 있었다. 물론 이 시간이 가르쳐 준 것들이 많았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작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행복, 그리고 삶의 속도와 균형을 찾는 것들이었다. 마침 카페를 하고 싶다는 분이 나타나서 가게를 넘기고 다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카페를 운영하며 그동안의 경험이 큰 선물이 되었고 진정 원하는 삶을 찾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천천히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춰 살고 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만족과 행복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작은 기쁨들을 하나하나 모아가고 있다. 그렇게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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