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내가 선택한 오늘
함덕의 연세 300만 원짜리 밖거리에서 살던 때였다. 창문을 열면 바다 내음이 스며들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반짝이는 해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닷가의 낭만만으로는 모든 것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했다. 핸드메이드 드림캐처와 썬캐처, 액세서리를 만들어 프리마켓에 다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자를 내고 공방을 운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방이 세 개인 집에서 안방을 제외한 가장 큰 방은 소품샵으로, 가장 작은 방은 작업실로 꾸몄다. 퇴직금은 이미 다 쓰고 여행하느라 모아둔 돈도 없어 인테리어를 할 여유가 없었기에 태국에서 가져온 쿠션을 놓고, 인도에서 구입한 그림을 걸고, 네팔에서 두르고 다니던 담요로 주방을 가렸다. 라오스 오지 마을에서 산 패브릭 러너와 이국적인 소품들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작업실에 앉아 소품을 만들며 드문드문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동네 이웃들은 공방을 사랑방처럼 찾아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 이 소소한 일상은 잔잔하면서도 묘하게 생기를 주었다. 삶에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저물면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작업실에서 다시 손을 움직였다. 라디오를 켜면, 심야 라디오 종현 DJ의 따뜻한 목소리가 고요한 밤을 채워주었다. 혼자 작업하던 시간에 그는 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친구 같았다. 그 모든 것은 이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한 번은 핑크색 머리에 야자수 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공방에 들러 유리병 썬캐쳐를 구입해 갔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관광객 청년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얼마 뒤 우연히 한끼줍쇼에 그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엑소를 못 알아보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딩고트래블의 제주에 가면 꼭 사야 할 기념품 10에 유리병 썬캐쳐가 선정되면서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여러 소품샵에서 입점 제안이 들어왔다. 1인 공방으로는 물리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었는데 직접 와서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사장님도 있어 소규모로 납품을 시작하며 매일 새벽까지 소품을 만들며 한계를 넘어선 일상을 이어갔다.
약간의 돈을 모였을 때 작업실 인근 신축 건물로 연세집을 하나 더 구해 공방과 작업실을 분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 걸 발견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몸을 혹사하다 결국 퇴사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며 여유롭게 살겠다고 했던 결심은 어디로 가고 또다시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하고 있었다. 이대로 공장처럼 일하다가는 어깨와 손목이 더는 견딜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원하는 삶을 향해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2년이 지나고 공방 계약을 연장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주거 공간과 공방의 연세를 합치면 1년에 1,000만 원이라는 큰돈이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계속 제주에서 연세를 내며 운영할지, 아니면 육지로 떠나 더 조용한 시골집을 구입해 작업에 집중할지 고민하다 물질이나 외적 성취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기 위해 육지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변화는 언제나 두렵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