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회사를 그만둬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서른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고 지금이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잠시 혼자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행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도전이었고 또 다른 변화를 가져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외여행은 여러 번 다녀봤지만 혼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목적지는 인도. 인터넷에서는 인도를 더럽고 위험하며 무서운 나라로 묘사하며 비하하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궁금했다.
주위에는 인도에서 몇 년을 살다 온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한국과 비교하면 분명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라고 했다.
인도에서의 치안이나 위생 문제만큼 걱정됐던 것은 이동이었다. 워낙 나라가 커서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데 열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기차나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몇 시간씩 연착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들었다.
중국을 경유해 약 10시간 만에 인도의 델리에 도착했다. 낯선 공항, 그리고 혼자 여행 온 한국인 여행자 몇 명과 자연스레 일행이 만들어졌고 함께 이동과 숙소를 공유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이 멤버들과의 인연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낯선 땅에서 함께했던 여행의 경험은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푸시카르는 인도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평화로운 풍경과 신성한 분위기를 가진 이곳은 술을 판매하지 않고 베지테리언 음식만 파는 식당들로 가득했다. 물론 돈을 슬쩍 건네면 술을 구해주는 곳이 있기도 했다. 거리에는 예쁜 수공예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아름다운 사원들은 꿈꾸던 인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푸시카르에서는 사막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는데 아침이 되면 숙소 앞으로 낙타가 왔다. 승마를 몇 번 해봤던 터라 낙타를 타는 것도 비슷하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말보다 두 세 배는 더 큰 덩치였다.
태국에서 코끼리를 탔을 때와 더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속에서 울려 나오는 공룡 같은 소리는 살짝 무서웠다.
두 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사막 안으로 들어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만 상상했지만 여행자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위급 상황 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막 외곽 지역이었다. 간간히 마른풀이 보이는 풍경 속에서 모래 언덕에 올라 해가 저무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인도 가정식 탈리와 따뜻한 짜이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잘 준비를 하는데 보통 사막투어라면 게르 같은 천막이 쳐져 있고 나무로 된 침대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래 위에 두꺼운 이불 몇 개를 펼쳐 깔고 그 위에서 침낭을 덮고 자라고 했다. 화장실은 모래를 파면 그 자리가 곧 화장실이 되는 친환경 시스템이었다.
겨울이라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사막에서 모래 위에 누워 자는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나 하는 마음으로 불편함도 잊고 별들로 가득 찬 하늘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탓인지 금세 잠들었지만, 밤새 들개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주변을 맴돌았다. 머리맡으로 와서 코를 킁킁대거나 가방을 뒤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들개들 때문인지, 아니면 밤새 피워놓은 모닥불 연기 때문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이 떨려 아침도 먹지 못한 채 담요를 두르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공황발작이 찾아왔다는 것을.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의 옷차림, 생김새, 건축물, 풍경이 마치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고, 눈을 뜰 때마다 새로운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긴장시켰던 것 같다. 이번엔 사막 한가운데에서 눈을 떴으니 불안감을 더욱 키웠던 것이다.
30분쯤 지나 컨디션이 회복되었고 다시 낙타를 타고 사막을 빠져나왔다. 괜찮아진 줄 알았지만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두 번째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같은 차에 탔던 일행들이 부축하며 배낭을 들어주었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중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왔다. 술을 마시지 않고, 외진 곳은 피하며, 해가 지면 숙소 밖에 나가지 않는 것. 이건 인도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공통적으로 하는 나만의 규칙이다. 무슨 재미냐 하겠지만 나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술을 안 마신다.
위생은 상상을 초월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았고, 길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피 묻은 생리대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창밖으로 쓰레기를 던져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제로 골목길을 지나가다 머리 위로 쓰레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인도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인데 도시에서는 백화점, 영화관, 대형 서점 같은 현대적 시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이 그냥 각각 다른 나라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 지역마다 방문했던 사원들, 둘러본 풍경과 문화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양면성을 가진 나라지만, 그런 다양함과 강렬함이 인도를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로 만들어 주었다.
인도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큰 배낭을 메고 장거리 이동을 반복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매우 힘드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삶에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지금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북부에 위치한 힌두교의 성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갠지스강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도시는 힌두교 신자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몸을 씻으면 죄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종교적 의식, 화장터, 그리고 수많은 사원으로 유명한 바라나시는 가트(Ghats)라는 계단식 강변에서 이루어지는 일출 의식과 화장 의식으로 독특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단순히 신앙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명상, 철학, 예술의 중심지로도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에서 화장되기를 원하는데 이곳에서 화장을 하면 다시 윤회하지 않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이 근처에 방을 잡고 그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 화장터에서는 나무를 태워 시신을 화장하는데, 나무값이 부족하면 시신을 다 태우지 못해 남은 일부를 강에 떠내려 보내기도 한다.
화장터에서 불타는 나무장작 사이로 보이던 사람의 발은 충격적일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며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빅뱅과 별에서 탄생한 원소들이 우주에 흩뿌려진 뒤 지구에서 화합물을 이루고, 생명체로 진화하며 우리의 몸을 구성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의 몸은 우주의 별들과 함께 탄생했고, 지금도 그 순환 속에 살아가는 일부일뿐이다.
혼자 떠난 인도에서 불완전한 사람이 온전히 존재하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여행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