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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다시, 문을 열며

by Liar

처음으로 문을 닫았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휴식이라기보다 잠시 멈춤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그 멈춤 끝에서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더 많은 마음을 꿰매고 싶다는 마음.

더는 혼자서만 감당하지 않겠다는 다짐.

늦겨울의 어느 날, 아직 찬 바람이 골목을 돌아들 무렵, 나는 가게 문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붙였다.


‘직원 구합니다.

수선은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듣는 일에 익숙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하루, 이틀, 삼일. 종이는 봄바람에 살짝 구겨졌지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종이처럼 가볍고 맑은 목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다.

“여기... 아직 구인 중인가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문고리를 조심스레 놓으며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노란 머플러 끝이 겨울바람에 흔들렸고, 그 아래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맑은 눈빛과는 달리, 웃음의 결엔 묘하게 자주 접은 종이처럼 조심스러운 주름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와, 유리창 안쪽에 붙은 구인 공고를 가리켰다.

“문에 붙어 있던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서요.

‘마음을 듣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누군가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앉았고, 손가방에서 낡은 천 조각을 꺼냈다. 작은 손수건이었다. 모서리가 해어졌고, 가장자리에는 흐릿하게 자수로 적힌 이름이 있었다.

“하얀”

“제 이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어릴 때, 엄마가 학교 소풍 때 손수건 잃어버리지 말라고 자수를 놔주셨어요. 근데 결국 잃어버렸죠... 며칠 전에 옛날 가방 정리하다가 이걸 다시 찾았어요.”

하얀은 손등으로 이마의 잔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직 추운 날씨에 볼은 발그레했지만, 눈동자만큼은 봄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조각을 받아 들었다. 해진 천은 오래된 시간이 녹아 있는 듯 부드러웠다.

“이걸 꿰매고 싶어요. 누군가와 같이.”

하얀은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혼자 꿰매면... 울 것 같아서.”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침묵했다.

그녀가 말한 ‘같이’라는 단어는 이상하리만큼 낯설고 따뜻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천 위에 실을 꿰기 시작했다.

하얀은 바늘을 천에 넣는 법을 배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바늘은 아픈데, 실은 참 조용하죠.

이상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에요.

찢어진 걸 이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붙잡아주는 기분.”

그녀는 가볍게 웃었지만, 그 미소 아래엔 무언가 오래된 그림자 하나가 스며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함께 실을 꿰는 일에 집중했다.

가게는 전보다 조금 더 밝아졌다.

나는 작업하던 바늘을 놓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같이 일해볼래요?”

하얀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마음을 고치는 일이라는 걸 잘 몰라요. 손님들이 저에게 부탁하는 수선에만 집중할 뿐이에요. 하얀 씨가 손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가능할까요?”

하얀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웃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단단하게 말했다.

하얀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오래 기억 속에 넣어두었던 말을 꺼내려는 사람처럼.

눈을 깜빡인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그 말에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덧붙인 무게가 실려 있었다.

“들어주는 건,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요.”

다음 날 아침, 하얀은 두 손에 작은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나타났다.

“저 청소 잘해요! 물걸레질도 한 번에 직선으로 쫙쫙!”

나는 어이없어 웃으며 카운터 앞에 쌓여 있던 서류 더미를 정리했다.

“그럼 저쪽 쇼파 먼저 정리해 줄래요? 손님들 기다리실 때 앉는 자리예요.”

하얀은 쇼파를 부드럽게 털고, 쿠션을 정리한 뒤 화분을 옆으로 옮기며 물었다.

“이 화분, 여기보다는 햇빛 잘 드는 창가가 좋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었던 듯한 쇼파 아래엔 먼지가 얇게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가구를 밀어낼 때마다 바닥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고, 그 틈 사이로 묵은 공기가 부서지듯 흩어졌다.

하얀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손끝에 힘을 주는 방식, 쿠션의 방향을 한 번 더 고르는 눈길,

그 모든 것에 이 공간을 존중하려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카운터 옆엔 작은 의자 하나를 추가로 두었다.

“이건 제 자리예요?” 하얀이 웃으며 물었다.

“네. 손님들 맞이할 때 거기 앉아 있어도 좋고요.”

“와... 여기,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장소 같아요. 말도 안 되지만... 낯설지가 않네요.”나는 말없이 웃었다. 하얀의 밝은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그날 이후, 나는 느꼈다.

사람이 들어온다는 건 가게에 빛이 스며든다는 것.

실보다 따뜻한 건 결국, 그 곁에 머무는 마음이었다.


[기록 33 : 햇빛 한 줄기만으로도, 방 안의 먼지는 드러난다.

하얀은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이 공간에 웃음이 번졌다.

사람의 마음을 꿰매는 데, 실보다 중요한 건 그 옆에 앉아 웃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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