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혹은 후퇴
가게 시작이후,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유리에 붙어 있던 ‘open’ 표지판을 뒤집는 순간,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씩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잠시 바깥을 바라봤다. 초겨울 바람에 사람들이 목을 움츠린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안에 나도 있었던 것 같다. 바람을 맞고, 눈을 피하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며칠 전부터 작업대 앞에 앉는 것이 버거워졌다. 손은 여전히 움직였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꿰매고 고치는 일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무언가를 고칠수록, 되돌릴 수 없는 것들만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스스로 꿰매야 할 마음이 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잠시 떠나기로 결정했다. 수선을 잠시 멈추고, 그보다 먼저 망가졌던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낡은 여행 가방엔 아주 적은 짐만 담겼다. 오래된 가죽 노트, 펜 몇 자루, 그리고 실과 바늘. 손에 익은 도구들은 이상하게 무거웠고, 그 무게는 떠나는 마음의 무게와도 같았다. 어디론가 가야 했다. 더는 이 자리에 앉아, 망가진 마음을 꿰맬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조각들을 붙잡아 온 손,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손. 그날도 이 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을 보내고 말았다.
‘은서’
그 이름이 오래간만에 마음 안에서 울렸다.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대학 시절, 우리는 같은 과였다. 의상디자인학과. 처음 만난 날은 봉제 수업 첫날이었다. 바늘땀이 고르지 않다고 실밥을 다 뜯어내던 은서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녀는 만들기보다 손보는 걸 더 잘했다. 디자인보다 복원에 더 흥미를 느꼈고, 무엇보다 ‘버리지 않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대였다. 뭔가를 처음부터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새로운 것, 완벽한 것. 실수 없이 재단된 천 위에 정교하게 박아 넣는 바느질. 하지만 은서는 자꾸만 오래된 천을 꺼내왔다. 헤어진 옷, 해진 소매, 색 바랜 단추.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의 시간을 꿰매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아름다워.”
그 말을 나는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낡은 건 그냥 낡은 거라고 생각했고, 해진 옷은 버리는 게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그녀는 계속 수선을 했고, 나는 어정쩡하게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남았다. 결국 내가 수선을 시작한 건, 그녀가 떠난 이후였다. 뒤늦게야 알았다. 망가졌다고 버려야 하는 건 아니었고, 아무도 고치지 못한 조각을 붙잡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넌 자꾸 덧대기만 해.”
은서의 말은 낮게, 그러나 단호했다. 우리는 어두운 방 안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우리가 같이 만든 머플러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실밥이 풀려 있었고, 나는 그걸 붙잡아 꿰매고 있었다.
“덧대는 게 뭐가 나빠?”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때의 내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자꾸 뜯겨 나가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게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 밑에 뭐가 있었는지는 결국 아무도 모르잖아.”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더니 내 손에서 머플러를 가져갔다.
“넌 마음을 꿰매는 게 아니라 덮는 거야. 실로. 말로. 친절한 눈빛으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뭔가 말하려다 입술이 마르고 목이 잠겼다.
“나, 더는 그런 방식으로 위로받고 싶지 않아.”
그게 마지막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 복도 끝을 지나가던 발소리.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울리지 않은 전화.
그 후로 나는 실을, 천을, 마음을 붙잡았다. 더 이상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고, 더는 어떤 마음도 손에서 미끄러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건 미련이었고, 후회였고, 동시에 죄책감이었다.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했고, 나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어디든 정착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곳은 예외였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동네. 벚꽃이 흩날리던 공원. 그녀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던 날. 내 삶에서 무언가 처음으로 따뜻해졌던 순간이었다.
나는 작은 모텔방에 짐을 내려놓고, 오래된 작은 재봉틀을 꺼냈다. 사실 그건 장식일 뿐이었다. 은서가 쓰던 것이었고, 지금은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 이 일의 시작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걸 꿰매는지 알아?”
예전에 은서가 말했던 적이 있다. 수선을 하고 있던 내게, 그녀는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살리고 싶어서.”
“무엇을?”
“기억을. 혹은 우리 사이를.”
그때 은서는 아무 말 없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따뜻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결국 실밥처럼 느슨해졌고, 우리는 그 느슨함을 방치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정말 마음을 꿰매줄 수 있기를, 그 상처에 덧대지 않고 직면해 주기를.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늘 수선하는 척하며, 사실은 회피하고 있었다. 내 마음의 가장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리고 얼마 전, 한 소포가 도착했다. 낯익은 필체로 적힌 주소. 나는 단박에 보낸 사람을 알 수 있었다. 은서였다.
가디건 하나와 고칠수있겠냐라는 메모하나..
그녀는 충분히 혼자 꿰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옷을, 이 메모와 함께 내게 보낸 건, 단순한 수선 이상의 의미였다. 그건 어쩌면, 조용한 안부였고, 늦은 용서였고, 한 줄짜리 그리움이었다.
(회상)
나는 가디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천 위에 올려두었다. 부드럽게 해진 소매, 그리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익숙한 섬유의 결. 실을 천천히 꿰어 넣으려다 문득, 손이 멈췄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고, 실 끝이 자꾸만 엉켜 들어갔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지만, 그 숨은 곧 울음으로 되돌아왔다. 목 뒤가 저릿해졌고, 뜨거운 것이 눈 가장자리를 타고 천 위로 떨어졌다. 들키지 않으려 조용히 삼켰던 울음들이 그 순간, 천의 실밥처럼 터져 나왔다.
가디건을 붙잡은 채, 나는 처음으로 나를 꿰매고 있었다. 은서가 남긴 그 옷은 결국, 그녀의 마음이자 나 자신의 조각이었다. 실과 바늘은 이제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상처를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용하게, 나는 바늘을 다시 들었다. 실 끝을 천에 꿰어 넣으며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나도 이제 조금씩 꿰매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