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이
제9장. 파랑이
아침부터 하얀은 분주했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바람이 문틈을 스치고 있었지만,
하얀은 바구니를 안고 이리저리 발끝으로 가볍게 돌았다. 툭 건드린 화분의 잎사귀가 흔들렸고, 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그녀의 머플러에 살짝 내려앉았다. 가게 안은 어느새 바람처럼 살아 움직이는 그녀의 기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사장님! 이 바구니 어디에 둘까요? 제가 보기엔 저기 화분 옆이 딱인데요!”
나는 조용히 책장을 정리하다 말고 하얀을 흘끗 바라봤다.
“거긴 햇빛 때문에 천이 바랠 수도 있어요.”
“아, 맞다! 천도 탈색을 하죠... 햇살이 좀 독하긴 해요. 오케이, 작전 변경!”
하얀은 스스로에게 윙크를 날리며 다시 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작게 웃었다. 가게에 웃음이 돌아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웃음은 잠깐이었지만, 마치 이 공간 전체가 조금 더 따뜻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가게 문이 댕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저기요, 여기 혹시... 이상한 것도 수선되나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옷가게에서 주는 것보다 훨씬 큰 크기였다. 그의 얼굴엔 약간의 당황과 쑥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이상한 거요?” 하얀이 먼저 반응했다.
“저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상한 것도 잘 수선합니다!”
내가 슬쩍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쓴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남자는 쇼핑백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회색 털실로 엉성하게 짜인 고양이 인형이었다. 아니, 고양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무엇이었다. 귀는 한쪽이 접혀 있었고, 눈은 한 쪽만 달려 있었으며, 다리는 길이가 달랐다.
“조카가 만들어준 건데요… 버릴 수가 없어서요. 근데 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하얀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 살폈다.
“이 친구, 이름 있나요?”
“고양... 이요. 그냥... 고양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좋네요. 고양이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고양. 아주 훌륭한 이름이에요.”
하얀은 두 손으로 고양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마치 처음 안아보는 생명체인 듯, 숨도 고르지 못한 채 품에 안았다.
낡고 울퉁불퉁한 실결마다 누군가의 시간이 고여 있는 듯했고, 하얀은 그 무게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주 천천히 고양을 두 팔로 감쌌다. 인형의 낡은 털실에서조차 어떤 체온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가 다시 살아나게 해줄게요.’
“오늘 안에는 끝내 드릴게요. 고양 씨, 잘 부탁해요.”
고객이 나간 뒤, 하얀은 팔을 걷어붙이며 선언했다.
“사장님, 이건 그냥 수선이 아니에요. 이건 회복이에요. 귀와 눈과 다리를 바로잡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고양 씨의 자존감도 세워야 해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 자존감은 실로 꿰매지나요?”
“오늘부터 꿰매집니다. 전례 없는 방식으로요.”
그날 오후, 가게는 작은 수술실처럼 조용했다. 하얀은 돋보기를 끼고 고양의 귀를 세웠다. 한쪽 다리에는 솜을 더 채우고, 비뚤어진 입도 곧게 폈다. 눈 대신 단추를 새로 달았고, 귀 옆에는 조그만 조각 리본을 시침핀으로 고정해보기도 했다.
“사장님, 이쪽 귀는 왼쪽 사람의 감정 회로를 담당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얘가 앞으로는 감정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점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작업 중간, 하얀은 실을 매만지다 말고, 고양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그녀의 손끝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정성스러웠고, 가끔 실이 엉켜도 ‘앗, 미안!’ 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고양 씨, 실밥 좀 따가워도 참아야 해요. 예뻐지려면 조금은 고통이 필요하답니다.”
“음, 입매는 약간 미소가 지는 쪽이 좋겠죠? 너무 무표정이면 사람들이 마음을 못 열 수도 있으니까.”
그녀의 말투는 마치 정말 고양이 인형이 반응을 하고 있다는 듯 부드럽고 사려 깊었다. 수선사는 이따금 고개를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묵묵히 실을 꿰었다.
하얀은 마무리 단계에서 망설였다. 고양의 목에 뭔가 허전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장님, 리본 좀 써도 될까요? 딱 하나만요. 고양이니까, 목에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하얀 씨가 책임질 거죠?”
“물론이죠. 고양 씨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 바로 떼어내겠습니다!”
하얀은 핑크색 리본을 조심스럽게 매듭지었다. 마치 진짜 고양이에게 리본을 달아주는 듯, 그녀의 손끝은 섬세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양을 안고 빙글 돌며 한 바퀴를 돌았다.
“자, 이제 거울 앞에서 본인 모습도 확인시켜드려야죠.”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고양 씨는 오늘 진짜 대우를 받네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을 때, 고양은 거의 새로 태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귀는 양쪽이 또렷하게 서 있었고, 눈은 반짝이는 단추로, 입매는 살짝 올라간 미소로 마무리돼 있었다. 그리고 핑크색 리본이 마지막 터치를 더했다.
“헉, 이게... 진짜 제 조카가 만든 그 고양이가 맞나요?”
하얀은 고양을 들어 조심스럽게 돌려보이며 말했다.
“귀 두 개, 눈 두 개, 다리 네 개. 그리고 마음 하나. 완벽하죠?”
고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그냥 인형이 아니라, 진짜 선물 같아요. 고맙습니다.”
그가 돌아간 후, 하얀은 고양의 남은 털실 조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사장님, 저... 처음으로 뭔가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나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씨, 수선도 결국은 마음을 꿰매는 일이에요. 오늘 아주 잘했어요.”
그날 저녁, 가게 안에는 새로운 작은 고양이 인형이 쇼파 옆 선반 위에 앉아 있었다. 하얀씨가 고양씨 친구를 만들겠다며 열심히 하나 더 만들어 버린 결과다.
그 이후, 고양씨 친구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채 가게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하얀은 인형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름을 만들어주고싶은데...”
나는 멀리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조용히 바느질 상자에서 파란색 실을 꺼내 준비해두었다.
하얀이 퇴근한 후, 조용해진 가게 안에서 나는 쇼파 옆 인형을 바라보았다. 리본 끝이 살짝 말려 있었다. 무심한 듯 흐트러진 그 모습이, 어쩌면 하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을 다듬어 오른쪽 귀 밑에 작은 자수 한 땀을 더했다. 아주 작은 글씨로.
[파랑이]
자수를 놓는 손이 멈추었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수선되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슬픔 하나가 실 끝에 실려 나간 듯.
봄을 기다리는 늦겨울의 그늘 아래, 작은 푸른 희망 하나를 심는 마음으로.
그건 그날의 기록이자, 하얀이 존재한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