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실패
제6장. 첫 번째 실패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가게 문이 열렸다. 낯선 종소리가 공기 속을 가르며 울렸다. 고개를 들자, 짧은 숨을 몰아쉬며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조용히 안쪽으로 걸어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긴장된 눈빛이었다.
“이걸... 고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커다란 천가방 안에서 두 개의 머그컵을 꺼냈다. 크기와 색이 조금씩 다른, 그러나 분명 한 세트였던 두 컵. 손잡이는 둘 다 떨어져 나가 있었고, 유약이 벗겨진 자리에선 칼날처럼 날카로운 금은 마치 오래된 침묵 끝에 터져 나온 말 같았다. 한쪽 컵의 바닥은 미세하게 이가 나간 상태였다.
“둘 다... 전 남편과 쓰던 컵이에요”
나는 말없이 컵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꺼풀을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제가... 실수했어요. 아니, 어쩌면 너무 오래 참았던 걸지도 몰라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얇았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겨울바람 소리에 쉽게 묻힐 만큼.
“싸우고, 다투고... 결국엔 서로 말을 끊었어요. 오랫동안.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이 컵을 던졌죠. 하나는 부엌 바닥에서 부서졌고, 하나는 싱크대 모서리에서 부서졌어요.”
나는 손에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컵을 들어 올렸다. 부러진 손잡이 자리를 따라 손끝에 가느다란 균열이 전해졌다. 컵은 단단했지만, 그 안에 담겼던 것들은 쉽게 식어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화해하셨나요?”
“이혼했어요.”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컵을 내려다보았다.
“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냥…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말속엔 단순한 물건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많았지만... 저도 그에게 상처를 줬어요. 되돌아보면... 컵처럼, 서로를 꽉 쥐고 있었지만 손잡이는 이미 금이 가 있었던 거예요. 붙잡는다고 해서, 그게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더라고요.”
나는 천천히 수선 도구들을 꺼내어 컵 하나를 부드러운 천 위에 눕혔다. 균열은 표면보다 컵의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틈이, 오래전부터 조용히 퍼져 있었던 것처럼.
“이건... 겉은 붙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다시 물을 담기는 어려울 거예요.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결국엔 새어 나오게 되니까요.”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씁쓸하지만, 어딘가 체념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괜찮아요. 저는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이 컵들이 이제는 뭘 담을 수 없다는 걸. 근데... 그냥, 놓고 싶지 않았어요. 한때는 따뜻한 걸 함께 담았던 것들이니까요.”
나는 다시 컵을 바라보았다.
손잡이 없는 컵. 균열이 속살처럼 드러난 그 자리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갔다.
작업을 시작하려는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하지만 손끝이 컵의 가장자리에 닿는 순간, 나는 문득 멈췄다.
그 균열을 따라,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미세한 울림이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이건 단순히 금 간 컵이 아니었다.
억지로 붙이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관계, 이미 부서진 채로 오래 견뎌온 감정이 거기 있었다.
붙인다고, 그 온기가 다시 돌아올까?
아니, 어쩌면 내 손이 닿는 순간, 그 얇은 벽마저 산산이 부서질지 몰랐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손을 거두었다.
수선은 손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지금 이 컵은, 손대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존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컵들 고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가끔은... 망가진 채로 남겨두는 게 나은 기억도 있지 않을까요? 괜히 힘들게 다시 붙이려다가, 더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오래도록 컵들을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컵을 천에 다시 싸기 시작했다. 아주 조심스럽고, 아주 느린 손길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별처럼.
가게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온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한참 동안 컵이 놓였던 자리를 바라보다 기록장을 꺼냈다. 펜 끝이 종이 위에 닿는 순간, 묘하게 떨렸다.
[기록 30 : 어떤 마음은 붙잡으려 할수록 더 깊게 갈라진다. 나는 사람을 고치는 게 아니었다. 어떤 관계는, 애써 붙이기보다 조용히 흘려보내는 게 더 온전한 이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