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by 고요한밤

1.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1989년 3월을 떠올려 봅니다.

새로운 학교로 배정되어

첫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시끌벅적한 1학년 여학생들과,

석사장교 후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신

20대 짧은 머리 짙은 눈썹의 선생님이

국어 수업으로 한 교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로부터 이미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그 교실의 느낌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가 다녔던 서울 모 고등학교는

서울 시내 변두리의 그저 그런

신생 공립 남녀공학 고등학교였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석탄 공장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시커먼 분진이 날아다녔고,

아침에 등교해서 가장 먼저 화장지 티슈로

책상과 의자를 일일이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체육시간 운동장에서 한 시간만 수업받고 와도

얼굴과 체육복 목둘레가 시커메지는 것이 기본이었고,

코와 기관지 쪽은 늘 칼칼하고 답답했습니다.

거기에다 근처 전철역에서 들려오는

여러 열차 소음들도 끊이지 않았기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척박한 교육 환경이었습니다.


2.

하지만 정작 그때의 우리를 더 힘들게 한 건

선생님들의 맥 빠진 수업태도였습니다.

그분들 각각의 학벌이나 실력은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좋은 학군지 명문 학교 발령 기회만 손꼽아 기다리며

잠시 쉬다 가는 학교로만 여기면서,

너네 같은 별 볼 일 없는 애들에겐

열심히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심한 태도와 짜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년을 앞둔 분들에겐 조용히

별일 없이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면 되었기에

수업 진도, 대학 진학 관련이나

전국 모의고사 성적 등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고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도 없었습니다.

한국의 써머힐이라고 할 정도로

느슨하고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에서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 중에 소수의 젊은 신참 교사들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해 주고자 애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인간적인 위로를

수업 시간을 통해 전달해 주셨습니다.

당시의 국어과목 선생님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면에서 기인합니다.

개별 학급 담임을 직접 맡지 않으셨어도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등 큰 행사마다 동행하여

늘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참여하셨고,

학교 축제와 문예반 행사 준비 때에도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항상 모든 아이들에게 한결같은 친근함으로,

호탕한 웃음으로 친절하고 따뜻하게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3.

그런 선생님께서 이제 교육자의 마음을 넘어

지역의 교육현장을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선상에 우뚝 서 계십니다.

쉽지 않은 결정 과정과 출마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아주 오래된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위해 기울이셨던

일관된 의지와 정성과 인품이라면,

교육 현장을 위해,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분명 값진 변화와 신뢰의 바탕을

든든히 만들어 가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한 번만 만나 뵈어도 알 수 있는 그 진심,

말씀은 차분하지만 행동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무엇보다도 늘 한결같은 선생님의 품격과 열정을

지역에서도 함께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당시 제자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중에,

존경하는 선생님의 새로운 도전을

이렇게 멀리서라도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게 큰 감동이자 영광으로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앞날에 좋은 풍경이 많이 펼쳐지기를,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발길이 닿는 모든 장소마다

선한 영향력과 밝은 빛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제자 드림


https://youtu.be/tQFbMlYoN2o?si=XAwO0YGBVXRVoooY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 무한궤도(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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