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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깎러 May 18. 2023

0.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서 미국 백수가 되었다.

나의 미국 취업 및 영주권 도전기, 그 서론

연구소를 떠난 지 이제 6개월째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잘 쉬고 있다.


박사님, 저 복무가 끝나면 아내가 있는 미국으로 가 취업하려 합니다.

연구소 상사님이시자 내 활용책임자(principal investigator, PI)인 책임연구원 박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던 것은 작년(2022년) 1월의 일이다. 나는 2019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연구를 업으로 삼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연구소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로 결정했다. 운 좋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한 정부출연연구소에 취업에 성공했고, 거기서 나는 3년간의 의무 복무를 시작했다. 희망하던 연구소에서의 근무를 시작한 나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 와중에 2021년 말이 되어서는 학계에 종사하겠다는 꿈은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대신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 써니에게 합류하고 그 주변의 수많은 테크 회사들 중 어딘가에 취업해 남들처럼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렇게 2022년 12월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달려왔다. 오랜만에 함께 살게 된 우리는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미국에 도착한 나의 첫 직업은 열심히 일하는 써니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었다. 이젠 내가 미국에 입국한 지 벌써 6개월 차가 되었다. 나의 새로운 직업은? 나는 여전히 간간히 집안일을 하며 푹 잘 쉬고 있다.


나는 전문직(H-1B) 비자로 체류 중인 써니의 배우자(H-4) 신분으로 미국에 입국했다. H-4 비자는 특별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한 소지자의 경제활동을 엄격히 제한한다. 따라서 나는 새로운 신분을 얻지 않는 한 집안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는 하다. 변명하자면 나는 입국 전부터 다방면으로 취업 그리고 취업이 가능한 신분의 취득을 위해 노력했다. 다만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친 까닭에 아직까지 그 결실을 얻지 못한 뿐이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아내 써니가 미국 영주권의 제반 준비 과정을 마치면 내가 미국에 입국한 뒤 함께 영주권과 나의 취업 허가(Employment Authorization)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취업 이민(Employment-based immigration) 영주권 취득의 첫 번째 단계는 외국인 노동자 이민 청원(Immigrant Petition for Alien Workers, 서식 이름을 따 I-140이라고 불린다)을 승인받는 것이다. I-140이 승인되면 H-1B 비자 소지자의 배우자는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데, 취업 허가서(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 EAD)가 발급되면 H-4 신분의 배우자는 미국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EAD는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의 시간을 요구한다. 써니는 재작년(2021년) 12월쯤에 일찌감치 I-140 준비를 시작했다. 평년이라면 I-140는 내가 입국하기 전에 여유롭게 승인될 예정이었고, 나는 입국하자마자 EAD를 신청하고 늦어도 2023년 하반기에는 여유롭게 취업할 수 있어 보였다.

2022년 하반기에 급격히 찾아온 경제 위기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고, 정상적으로만 보였던 우리의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써니는 I-140 준비를 위해 작년 4월에 미 노동부(Department of Labor, DOL)에 영구 노동 허가(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속칭 PERM 또는 PERM LC)의 접수를 완료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기 호황이 지속되고 있던 터라 승인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2022년 하반기에 접어드니 미국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부터 PERM의 승인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일은 보통 3개월 정도를 가리키던 승인 캘린더가 점점 늦어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써니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많은 테크 회사들은 고용을 축소하고, 나아가 대량 정리해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H-4 비자가 있어 미국으로의 합류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EAD 발급이 늦어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도 일자리가 없어 무기한 백수로 지낼 신세가 되었다.

이민 포럼을 구독하던 써니는 무엇인가 많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직후 우리는 나의 취업과 우리의 미국 영주권 신청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열심히 구직 활동에 나섰고, 동시에 대학원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써니는 나와 본인의 독립 영주권 신청 방법을 열심히 알아봤고, 주변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 수집에 나섰다. 지난 1년여 동안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우리는 불가항력에 이리저리 시달렸고, 그동안 우리의 계획은 여러 번 재수정되었다.


결론만 여러분께 공유드리자면 우리는 영주권 신청에 성공했고, 나는 높은 확률로 일단 오는 7월부터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우리의 영주권 신청서는 우리가 지원했던 2순위 취업 기반 영주권(Employment-Based Immigration, Second Preference, or EB-2)의 쿼터(quota)가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는 와중에 4월 마지막주에 가까스로 미국 이민국(USCIS)에 접수되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수개월에서 2년 사이의 기간에 건강검진을 받고, 지문을 접수하고, (운이 없다면) 영주권 인터뷰를 마친 후 영주권을 받아 미국에서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자주 찾아가게 될 그곳, USCIS Case Status Online.

더 오랜 기간 동안 백수로 남을 뻔 한 나를 구해준 회사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한 테크 회사이다. 나는 지난 3월 말 감사하게도 이 회사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고 계약서에 서명도 완료하였다. 다만 계약서에 서명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아직 일을 시작하지 못한 까닭은 나의 취업비자가 아직 발급되지 않아서이다. 나는 이름도 거창한 특수 재능 소유자(O-1) 비자를 지원받고 비자가 승인 나면 바로 출근하기로 인사팀과 약속을 마쳤다. 회사가 고용한 이민 로펌인 Fragomen과 심지어 계약서에 서명하기도 전에 비자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벌써 두 달이 넘게 지나도록 아직 서류 준비가 완료되지 못했다. 보통 접수 후 15일 내에 승인된다니 큰 걱정은 없지만, 계속 기약 없이 취업 날짜가 늦어지니 답답하고, 좀이 쑤시고, 결정적으로 써니한테 너무 미안하다. 써니는 인생에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이 기간을 마음껏 잘 즐기라고 하지만, 백수로 지내는 4개월 +a의 기간 동안 나는 주부(요샛말로 house organizer)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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