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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깎러 May 18. 2023

1.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

만 32세 경력단절 박사의 좌충우돌 장래희망 결정기

미끄러져 내려가기 딱 좋아 보이는 내리막이다. 덕분에 내 마음도 내 미래도 함께 내리막.

TL;DR:

H-4 비자를 소지한 경력 단절 박사인 나에게는 취업이 가능한 미국 신분을 취득하는 방법이 크게 4가지가 있었다:

직접 취업에 성공하고 취업 비자 (O-1 / H-1B) 받기

대학원(석사 과정) 진학 후 학생(F-1) 비자에 따라 나오는 현장 실습 기간(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 이용하기

영주권 (NIW 기반 EB-2 또는 EB-1A) 직접 신청하기

배우자의 EB-2 (PERM 또는 NIW 기반) 과정 중 I-140 승인 후 취업 허가(Employment Authorization) 받기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 진행했고, 결과만 말씀드리자면 (오늘 까지는) 아직 백수다.


직감적으로도 느꼈고 또한 수많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재확인 한 바, 미국에 취업하고 영주권을 받아 오랫동안 머물러 살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 나 같은 배경과 사연을 가진 사람은 대단히 드물다. 서론(이라 하기 부끄러운 두서없는 잡소리)에도 어느 정도 적었다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직후 의무 복무를 위해 한국에서 3년을 보낸 후 2022년 연말에 취업 기반(H-1B) 비자 소지지의 배우자(H-4) 신분으로 미국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내 아내 써니는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취업에 성공, 졸업 직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이사를 왔다. 써니는 곧장 H-1B 비자를 신청해서 추첨에 당첨되었고, 2020년에 H-1B 비자를 받았다. 미국은 H-1B 비자 소유자의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미국 거주가 가능한 H-4 비자를 제공한다. 따라서 나는 한국에 거주 중이었음에도 H-4 비자를 받아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었고, 의무 복무가 끝난 후 아무런 지장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미국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체류 신분을 취득하는 것이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취업이 가능한 신분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지고 있는 H-4 비자는 유효기간 내에 미국에서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지만 미국 내에서 일체의 수익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적 미국 취업자의 대다수는 분들은 미국에서 학위 과정을 마치시고 학생(F-1) 비자에 따라오는 1년에서 3년 기간의 OPT를 이용해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시는 분들이다.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부류는 한국 대기업에 근무하시다 주재원 비자를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오시는 분들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를 차지하는 분들이 거의 혈혈단신으로 한국에서 활로를 개척해 도착하신, 크나큰 존경을 받아 마땅한, 소수의 분들이다. 비록 몇 가지 제한이 붙은 신분을 가지고 입국했지만, 일단 현지에서 취업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한국에서 직접 활로를 개척해 오시는 분들 보다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긴 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은 교환 방문(J-1) 비자를 가지고 박사 후 연구원으로 오셨다 산업계로의 전직을 희망하시게 된 매우 소수의 분들 정도를 그나마 꼽을까? 다만 이 분들도 박사 후 연구원 신분으로 미국으로 나오시는 길은 험한 길이셨겠지. 어쨌든, 나같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미국에 온 사람이 '~기' 같은 제목을 달아 하는 말 자체가 대단히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운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록을 남기는 그 자체에 의미가 충분히 있기에, 그리고 나의 좌충우돌 과정이 혹시 이 넓은 우주에(?) 어딘가 있을지 모를 나 같은 이상한 상황에 처한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기에 이렇게 지리한 글을 남긴다.


학계를 버리고 미국으로 복귀해 사기업에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2021년 연말의 내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민국 국적의 만 31세 기혼 남성, 2022년 연말 군필 예정

미국 H-4 비자 소지 - 거주 가능, 합법적 노동 불가
 - 2023년 7월 8일 만료 예정이나, 2025년까지 연장 신청 가능

배우자가 취업이민 청원(Immigration Petition for Alien Worker, I-140)을 접수하기 위한 제반 준비 상황을 준비 중

전자 공학(Electrical Engineering) 박사 학위 보유 - 미국 주립대 졸업
 - 총 15개의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논문/학회지/교과서 장을 집필한 바 있고, 모든 출판물의 총 인용 수는 Google Scholar 기준으로 400회 이상.
 -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모두 미국에서 수여하였으며, 학사 학점은 3.5/4.0
 - 학사 전공 중 심화 전공(track)은 신호처리(Signal Processing) & 컴퓨터 공학(Computer Engineering)이었으며, 따라서 펌웨어/소프트웨어/신호처리 관련 과목을 많이 수강함
 - 학부생부터 10여 년의 연구 경력 보유
 - 박사 및 박사 후 연구 분야는 생체 (Bioelectronics) 하드웨어 개발

대한민국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별정직 연구원으로 2년 근무
 - 2022년 12월 계약 만료 예정
 - 이 밖에 사기업에서의 근무 경력은 전무

입사 지원 시 사용했던 이력서를 가져와 봤다.

나와 유사한 상황을 가진 한국인이 미국에 취업을 꾀할 때 노리는 가장 흔한 방법은 국익 면제(National Interest Waiver, NIW)조항을 이용해 구직 제안 없이 스스로 2순위 영주권(Employment-Based Immigration: Second Preference, EB-2)에 도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 이민국(USCIS)의 판단 하에 고용계약서 없이도 EB-2 영주권의 취득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방법이다. 이민국이 제시하는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대략 어느 정도의 기준을 충족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조건을 만족한다는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 이미 잡혀 있다. 이민 변호사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논문-특허 등의 인용 수가 해당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공과 특정 학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연구직에 종사했던 사람이 해당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기에 유리하다.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는 많은 경우 학위 과정에서 위와 같은 조건을 자연스럽게 충족시킬 수 있으므로 아무래도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해당 항목으로 영주권을 많이 신청하곤 한다.

나에게도 NIW를 신청하는 것이 영주권을 획득하여 미국에 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긴 했는데, 상담을 받아 보고 곧 마음을 접었다. 당시 걸림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 연구원 박봉에서 거금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의 돈을 변호사 수임료와 접수비로 뎅겅 떼어 내야 해야 한 다는 점. 두 번째는 만약 문제가 생길 시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미국에 입국하지 못한 채 배우자 써니와 떨어져 살아야 한 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천만 원은 큰돈이긴 하지만,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는데 그 정도의 비용은 감수할 만하다. 다만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두 번째 이유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 이미 코로나 때문에 두 해 동안 생이별을 경험한 나는 조금의 위험 부담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연구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 학계에서의 내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고 있던 차였다. 게다가 가족이랑 떨어져 변변한 친구도 없이 원룸에서 혼자 살며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는 거의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 나의 멘탈은 반쯤 나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내 멘탈의 관리를 위해 써니가 특별히 해외 재택근무 승인을 받아 한국으로 귀국해 2021년의 대략 1/4 동안을 유럽 시간대로 근무하면서 나와 함께 살아 주었다. 지독한 외로움을 겪은 나는 군 복무가 끝나면 단 하루라도 지체하지 않고 써니 옆으로 날아가 일을 하든 집안일에 충실하며 살게 되는 써니와 붙어서 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2021년 하반기 - 2022년 상반기의 대략 1년의 기간 동안 나는 마치 매주 장래희망이 바뀌는 초등학생 마냥 커리어 계획을 계속 수정했다. 일단 학계를 떠나기로 한 것이 처음이고 (바로 교수직에 지원하기는 스펙이 부족했고, 포닥을 다시 하자니 너무 앞길이 막막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견딜 만큼 연구가 더 이상 재미있고 짜릿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길에 한 발 짝 얹어 본 것이 다음이고, 마지막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충 따라 춤추던 가락인(…)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그나마 가장 빠른 취업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나는 가장 먼저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미국에 취업을 노렸다. 2021년 하반기만 해도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취업이 훨씬 똑똑한 선택처럼 보였다. 일단 훨씬 많은 고용 기회가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다음으로는 타 엔지니어링 / R&D 직군에 비해 적어도 20 % 에서 50 % 정도 높은 임금이 또 다른 중요한 이유였다. 테크 회사들은 팬데믹이 가져온 뉴노멀로의 전환에 확신을 가지고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가리지 않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마구 뽑아대고 있었다. 때문에 전공자 비전공자를 막론하고 코딩 테스트(코테)를 통과할 실력이면 어디든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비록 실무 경험이 없고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한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나름 Python/Matlab을 비롯한 scripting language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었고 학부 시절 Java와 C++를 이용해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본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LeetCode를 이용해 코딩 실력을 늘리면 작은 회사의 문은 한 번 두들겨 봄 직 하다고 생각했다.

2021년 하반기만 해도 그럴듯해 보였던 이 시나리오는 내가 열심히 LeetCode를 하(려고 폼을 잡)고 있던 2022년 초순에 곧 종잇장이 되어 버렸다. 2022년 세계 경제는 2021년의 대 호황을 뒤로한 채 불황으로의 급전직하를 시작했다. 일단 어떻게든 먼저 취업을 하고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쉽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취업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시 경제 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고용 중단을 선언한 메타를 필두로 빅테크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기 시작했고, 곧장 다른 회사들도 앞다투어 고용을 줄였다. 가장 쉬운 미국행 방법으로 보였던 신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취업은 곧장 가장 어려운 방법이 되어 버렸다.


2022년에 막 들어선 시기만 하더라도 아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팬데믹의 종식에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하드웨어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기도 했고, 나는 (연구직에 있긴 했지만) 대략 10년 동안 명함에 전자공학자라고 적어 놓고 살아왔기에 하드웨어 직군으로는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분은 출국 전 취업에 성공해서 취업 비자를 받아 해결하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혹시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입국 후 몇 달만 기다리면 써니의 영주권 신청 과정에 함께 발급되는 취업 허가증(EAD)을 받을 수 있으니 또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2021년만 하더라도 조금 쉬다 EAD를 받아 취업하는 것이 아주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평년대로라면 대략 2023년 중순에서 하순쯤에는 충분히 EAD가 나올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써니는 2022년 4월 중순에 미국 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에 취업 이민에 필요한 노동허가 승인(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PERM LC)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PERM 승인에 보통 3개월 정도가 소요되었으므로 내가 미국에 입국할 2022년 12월 전에 취업 이민 청원(Immigrant Petition for Alien Worker, I-140)은 안전하게 승인될 것 같아 보였고, H-4를 소지한 배우자의 EAD는 I-140이 승인된 후 신청하면 약 3–6개월 내에 발급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늦어도 2023년 하반기에는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2년 하반기가 되어 문제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이제는 소프트웨어 회사 하드웨어 회사 할 것 없이 고용을 줄이고 직원들의 대량 해고(layoff)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써니는 감사하게도 이 화마에서 안전했는데, 문제는 써니의 회사도 직원들을 대량 해고할 계획이라는데 있었다. 대한민국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들이 고용을 줄이고 직원을 해고하고 있는 와중에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고자 하는(…) 행태를 노동부가 좌시할 이유가 없다. 경기 악화를 이유로 PERM 승인은 계속 늦어지기만 했고, 2022년 4월에 접수한 서류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승인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미 메타(Meta)의 외국인 직원들이 오랜 기간 노동부로부터 PERM을 승인받지 못했던 선례가 있기 때문에, 많이들 애써 부정했지만 당연히 비슷한 결과가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전략적인 미래 계획이 절실해진 것이다. 이미 하드웨어 회사 고용도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고, 어디에도 100 % 확률을 보장해 주는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이에 써니와 나는 (엄청난 시차를 뚫고 스카이프로 하루 한 시간씩 통화를 하며)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계획을 세우려 노력했다.


써니와 나는 큰 갈래로 총 네 가지의 바람직한(?) 합법적 취업 허가 취득 방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떤 방법도 내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 주지 않았고, 매우 운이 없다면 수년간 손가락만 빨면서 미국에서 지낼 수 있는 확률도 있었다. (아 물론 나는 지금 훌륭한 전업주부로 잘 살고 있다!!) 다만 다행히도 각각의 방법이 서로 병행이 가능한 방법이기에, 물론 준비 과정에서의 품도 곱절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모든 방법을 동시에 준비하며 나에게 어떤 미래가 찾아오는지 한 번 보기로 했다.

각 방법들을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먼저 내가 직접 나서 취업 허가를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일단 먼저 회사에 합격하여 고용계약서에 서명하고, 그다음 회사의 도움을 받아 취업 비자를 받는다.

대학원(석사 과정)에 진학해 현장 실습 기간(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을 이용한다.

영주권에 바로 도전한다

정도가 있었고,

써니의 도움을 받아 취업 허가를 확보하는 방법은:

써니의 I-140이 승인되면 그 후 EAD를 신청해 EAD가 발급되면 취업한다.

였다.


먼저 취업 비자를 받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H-1B 비자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고용계약서에 서명하고, 회사의 도움을 받아 H-1B 비자를 신청한다. 낮은 확률로 비자에 당첨되면 2023년 10월 1일부로 회사에 합류한다.

O-1 비자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고용계약서에 서명하고, 회사의 도움을 받아 O-1 비자를 신청한다. 비자가 발급되는 대로 회사에 합류한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컴퓨터 과학 석사(MSCS) 과정에 진학해 수업과 프로젝트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의 전직을 준비할 예정이었고,

2년 과정에 등록해 1년 후 인턴으로 취업을 하고, 복귀 제안(return offer)을 받아 해당 조건이나 더욱 좋은 조건으로 고용계약서를 확보한다. 나머지 반년 동안 졸업 후 OPT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취직한다.

1년 과정에 등록하고 어떻게든 졸업 후 취직할 자리를 알아본다. 졸업 후 OPT를 이용해 취직한다.

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영주권을 신청하는 방법에는

NIW 기반 EB-2 영주권에 도전한다.

EB-1 영주권에 도전한다.

이 두 갈래가 있었고, 두 가지 방법 모두 대략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a의 적절한(…) 시간이 지난 후 영주권이 발급되면 취업을 하는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써니의 도움을 받아 취업 허가를 확보하는 방법은 써니의 I-140이 승인되면 그 후 EAD를 신청해 EAD가 발급되면 취업한다는 단순 명쾌한 방법인데, I-140의 취득 방법에는

PERM 승인을 기다린다.

NIW 기반으로 새로 I-140을 신청한다.

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대략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나는 아직 백수다. 다만 이미 고용계약서에는 서명을 완료했고, (5월 17일 현재 기준) 지금은 O-1 비자 청원에 필요한 모든 서류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 회사에서 고용한 Fragomen 로펌에서 얼른 청원서를 작성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나는 석사과정에 지원한 주변 6개의 학교 중 총 4개의 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고, 만약을 대비하여 이 중 1개의 학교에 일단 예치금을 걸어 놓았다. 엄청나게 운이 좋게도 올해 지옥 같은 경쟁률(어림잡아 8:1)을 보여준 H-1B 추첨에도 뽑혔고, 따라서 오는 10월 1일에는 H-1B로 신분이 전환될 계획이다. 최종 승인까지 취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내 영주권 신청은 준비하지 않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해 써니의 NIW 기반 EB-2 I-140 준비를 도와 추천서의 섭외를 마무리했다. NIW를 준비하던 중 하늘의 도움으로 이미 한 번 거절을 경험했던 써니의 PERM이 무려 11개월을 기다린 끝에 승인되었고, 우리는 써니의 I-140를 PERM 기반으로 접수해 승인받을 수 있었다. 영주권의 문호가 닫혀가고 있던 급박한 상황 속에 천신만고 끝에 4월 중 신분 전환(Adjustment of Statement, AOS) 신청에 성공했고, 동시에 써니의 승인된 I-140을 기반으로 나의 EAD 또한 신청할 수 있었다.

모두 생략하고 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플랜 A 대로 '합격 후 취업 비자 확보'에 성공한 셈이긴 한데, 동시에 플랜 B, C, D로 진행했던 모든 방향으로 일이 잘 풀리는 바람에 졸지에 신분 부자가 되게 생겼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영주권자가 되어 있을 확률이 높고, 그 사이에 H-4 -> O-1 -> H-1B로 두 번 더 신분 세탁(?)을 할 예정이다. 만약 내 H-4 비자가 만료되는 오는 7월 8일 이전에 O-1으로의 신분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금 걱정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일단 H-4 비자의 연장 신청서도 함께 접수해 두었기에 미국에서 당장 떠나야 하는 미연의 상황은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마일스톤은 AOS 신청이다. 어쨌든 H-1B 비자는 취업 기반 비자이기 때문에 최대 60일까지 허용되는 유예 기간(grace period)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H-1B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기업과 고용계약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다만 AOS를 신청한 사람은 체류 신분에 "AOS 대기자"라는 임시 신분이 하나 추가 되기 때문에, 일단 6개월 동안 고용계약을 지속한다면 그 후에는 고용계약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사라진다. (물론 만약 AOS가 거절된다면 즉시 미국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이 있다.) 물론 써니가 지금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자발적으로 그만 둘 확률은 대단히 낮다. 그래도 앞으로 6개월만 지나면 혹시라도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다 써니를 툭 건드려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쉬지 뭐'라는 편한 마음으로 잠시 누워 쉬다가(…)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 들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나와 함께 큰 마음고생 한 써니에게 다시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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