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번 해 보았습니다만 잘 안 되네요
나는 총 16개의 지원서를 보냈고, 내 이력서는 모두 합쳐 단 네 번 resume screening을 통과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hiring manager와 phone screening을 해 볼 수 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한국 주소와 연락처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생각한다.
업종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테크 분야의 많은 기업에서 지원자를 선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채용 담당자(리크루터, recruiter)와 이력서 검증 시스템을 이용한 1차 지원서 검토
(보통 resume screening이라 부른다)
직속 관리자(하이어링 매니저, hiring manager)의 2차 지원서 검토
Hiring manager와의 짧은 대화
(보통 phone screening이라 부른다)
대면 기술 면접 (onsite technical interview)
부장급(director) 면접
인사팀과의 조율을 통한 채용 결정
아직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시절, 선배님들 그리고 친구들은 보통 수 개의 대기업에서 채용 의사(보통 verbal offer라고 불리는)를 전달받은 후 회사들을 저울질하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나 미래가 확실한 회사를 골라 취업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 모두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노력한 끝에 이루어낸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기에 그 단계까지 나아간 것이었겠지. 그렇지만 나도 꽤나 열심히 살아온 편이었기 때문에 나도 서넛 자리에는 최종 면접까지 진행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지원서를 쓰는 한국의 취준생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 골라 골라 스무 개 정도의 지원서를 쓰면 그중 반 수 정도는 서류전형은 통과하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내 안일한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미디어를 통해 이미 알음알음 알려진 사실이라 새삼스럽지만 굳이 적어보자면, 대다수 미국 기업의 입사 과정에서는 인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채용 설명회에 참석해, 우선 학교 선배나 recruiter를 만나서 나를 잘 어필하며 대화를 하다가 회사랑 코드가 좀 맞다 싶으면 그때 바로 이력서를 건네서 입사 지원을 시작하는 게 국룰(?)이었다. 이에 더해 대학원생들은 학회에 가끔 참석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학회 스폰서 기업의 부스에 방문하여 현직자와 이런저런 노가리를 까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재빨리 이력서를 건네어 본인의 대학원 탈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다. 둘 모두 아무래도 사람 간의 대화로 시작하는 과정이다 보니 인적 요소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터넷으로 채용 공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지원하는 과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아마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몇 년 동안은 이 방법이 유일한 창구였으리라 생각한다.
전통적인 미국 기업 대부분에는 채용설명회와 온라인 지원에 더해 친구 추천(리퍼럴, referral)이라고 하는 지원 방법 또한 존재한다. 이는 채용 공고를 본 현직 직원이 인사팀에 해당 직책에 어울리는 좋은 인재를 추천해 주는 방법이다. 채용 공고가 외부에 알려지기 전 사내에 먼저 공지되어 직원들이 먼저 접하게 되는 회사의 경우, 만약 현직 지인이 있는 지원자의 경우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접해 일찍 입사 지원 준비를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 이 경우 사내 인사이동을 우선시해서 올라오는 공지인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 보통은 적절한 후보자를 찾지 못해 지 않아 채용 공고가 사외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Referral을 통해도 일단 지원서는 작성하게 되어 있는데, referral을 받은 사람의 지원서는 공개 채용 공고를 통해 referral 없이 보낸 지원서에 비해 resume screening을 통과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국의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익명 SNS 블**드(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시는 한국의 그 익명 SNS 블**드 맞다! 두 블**드 다 이용해 본 내가 평을 하자면 서로 주된 대화 주제가 다르기는 한데, 아무튼 미국에서도 유명하다.)에는 referral을 구한다는 게시글과 이를 순순히 주겠다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직원들이 referral을 순순히 뿌리는(?) 이유는 간단한데, 본인이 추천한 지원자가 합격될 경우 직원에게 소정의 상여금(referral bonus)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테크 회사에는 전 세계에서 다수의 인재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최종 면접 통과를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보다 지원자의 실력과 지원자와 해당 직책의 적합성(즉 fit)이다. 다만 referral은 지원자가 최종 면접까지 나아가는 단계에서 부득이하게 차별받을(?) 가능성을 줄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referral은 resume screening 통과 확률을 높인다고 말한 바 있는데, (많은 현직자들이 동의하는 바) 실제 referral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단계는 recruiter들의 resume screening 뿐만 아니라 hiring manager의 resume screening 단계이다. 회사에서 구조적으로 제공하는 referral은 보통은 recruiter들에게 전달되고, 추천 직원의 역할은 공식적으로는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직원들끼리의 대화는 식사나 커피 타임, 아니면 회의 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비공식적 referral은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Hiring manger는 항상 자기 팀에 좋은 신입 직원을 뽑고 싶어 하고, 본인이 구하는 직책에 좋은 fit으로 보이는 지원서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지원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테니까.
2022년 4월부터 9월에 까지 나는 총 9개 기업 14개 직책에 지원서를 접수하였다. 이 중에는 아내 써니가 다니는 회사의 하드웨어 직군 직책도 있었고, 대학원 연구실 선배들이 다니고 있는 회사들의 하드웨어 직군 직책도 있었다. 회사들은 소위 '빅 테크' 기업, 하드웨어 계열 대기업, 의료기기 기업, 그리고 스타트업 이렇게 다양한 회사들을 골랐고, 모든 직책은 하드웨어 엔지니어 / 연구원(Research Scientist) 직책이었다. 보수적으로 접근하여 채용 공고의 직무 기술(job description)에 나온 모든 조건을 내가 만족하는 직책들만 골라 지원서를 작성했고, 직군에 맞추어 조금씩 수정해 총 4가지 버전의 이력서를 준비해 지원서에 사용했다. 총 14개 직책 중 8개 직책은 써니와 대학원 선배들의 referral을 받아 지원하였고, 나머지 6개 직책은 회사 웹사이트 지원공고를 통해 바로 지원하였다.
이 시기 지원서를 쓸 때 가장 걱정했던 점은 나의 한국 주소와 연락처였다. 일단 이력서에는 상단에 "2023년 1월부터 미국 체류 예정 / 취업 비자 지원 필요"라고 적어 두어서 recruiter가 해당 사항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해 두었다. 다만 지원서에 기록할 미국 연락처와 주소에는 내 주소와 연락처는 한국 주소와 연락처를 사용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는데(이 당시 쑈니는 미국인 하우스 메이트 두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recruiter라면 내 지원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모든 지원서에 나의 국적, 미국 비자, 비자 지원 필요의 여부 등을 기록하게 되어 있어 이에 맞추어 주소와 연락처도 한국의 주소와 연락처를 사용해 지원서를 접수하였다. 다행히 지원서 접수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9월 말까지 지원한 어느 회사와도 면접에 임하지 못했다. 가장 면접에 가까웠던 직책은 유명한 빅 테크 회사의 하드웨어 엔지니어 자리였는데, recruiter와 이메일로 연락이 닿았지만 hiring manager와의 면접은 진행할 수 없었다. Recruiter에게 미국행 일정을 알려주고 hiring manager와의 면접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후로 그와의 연락이 끊어지고야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는 채용 중단 (hiring freeze)을 발표했다. 나머지 회사들 중 두 회사는 회신을 주지 않았고, 그 외의 회사들로부터는 평균 1주일 내외의 매우 빠른 시기에 resume screening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솔직히 job description에 비추어 보아 내 지원서가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기에, 조금 의아하고 동시에 꽤 낙담한 것이 사실이다. 일단 10월이 되어서는 이미 미국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가 되었기에, 회사 지원보다 다른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지원서 작성은 잠시 손을 내려 두었다.
평균 답변 시간이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금 와서 유추해 보건대, 내 지원서들이 resume screening을 통과하지 못했던 주요하는 이유는 내 주소와 연락처가 모두 한국에 있었다는 점인 것 같다. 아마 '미국에 있을 것, 또는 미국 시민권자/영주권자일 것'이라는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니 지원서가 사람의 손에 전해지기도 전에 자동으로 걸러졌겠지.
지원서에 즉각 회신을 주지 않은 회사는 단 두 회사였는데, 의료기기 회사였던 한 회사는 지원서를 넣은 지 4개월이 지나서 자동 응답 이메일로 나의 탈락을 알려 주었다. 내 지원서를 놓고 진지한 고민을 하긴 한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지원서 작성을 잠시 손에 놓은 시기에 받은 탈락 통보였기에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한 회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위치한 한 스타트업 회사였다. 내 대학원 시절, 그리고 연구원 시절의 연구 주제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회사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분야의 성장성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자리가 매우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이 회사는 내 지원서를 책상 서랍 어디에 넣어 두었던 건지 4개월 동안 내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있었는데, 내가 막 미국에 도착해 정신없이 이삿짐을 풀고 있을 때 그제야 recruiter 하나를 짝지어 주었다. 정신없던 와중에 job description을 다시 읽어보니 업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또 솔직히 이 친구들의 태도에 조금 마음이 상한 것도 있어 면접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손하게 답장을 보냈다. 만약 이 회사의 면접에 응했다면 제때 취업 비자를 발급받아 지금쯤 열심히 실험실을 쏘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 중 유일하게 한 군데 회사와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 회사가 바로 내가 고용계약을 잘 마치고 지금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이다. 지금 합격한 직책에는 대학원 연구실 출신 대 선배님의 referral을 받아 미국 입국 직전인 지난 11월 말에 지원하게 되었다. 선배님은 대학원 졸업 후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해 오셨는데, 작년에 미국에 잠시 들렸을 때 때마침 이직하시어 써니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계시던 중이라 잠깐 찾아뵙고 취업 조언을 여쭌 바 있었다. 선배님께서는 내 딱한 사정을 알고 계시던 터라 기존에 본인이 근무하시던 회사의 팀에 나를 추천해 주시고 싶어 하셨는데, 내 미국 입국과 구인 공고가 마침 때가 맞아 선배님께서 referral을 해 주실 수 있었다. 선배님께서는 hiring manager였던 매니저님과도 막역한 사이셔서 감사하게도 내 이력서를 매니저님과 공유해 주셨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이 회사 지원 과정은 나중에 공유하도록 하고, 일단 시간 순서를 따라 다음 글에는 대학원 지원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