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약 7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상실했습니다.
삶 위에서 문제가 내 앞에 닥칠 때, 늘 자책하며 나를 개선시키는 방향으로만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 방법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들에 아주 유효한 삶의 대응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제로인 '죽음'이라는 현상 앞에 나를 개선하는 삶의 대응방법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전까지 구축해 놓았던 저의 모든 세계가 무너졌습니다.
분노와 슬픔 가운데 마음속에 품은 의문을 해소하고자 다수의 영화, 고전문학, 철학서 등을 보았지만 아직도 정답에는 가까워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를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아가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아’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던 나의 다양한 방어기제들을 스스로 타자화해 조망하게 되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존재하는 나를 위해 '지금'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면전에서만 인간의 진정한 자아는 태어난다. -성 어거스틴
생각이란 휘발성이 강해 쉽게 소멸해 버리기에, 언제부터인가 사유한 것들을 글로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두려워하는 일에 대해 써 내려가다가 스스로 가장 납득할 만한 나의 내면과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글을 쓰는 행위는 혼란스러운 내면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임을 체득했습니다.
얼마 전엔, 사용하는 에버노트의 글들을 정리하기 위해 과거에 썼던 일기들, 정리안 된 채 쏟아놓은 활자들을 처음부터 읽어 내렸습니다. 다른 일에 잊혀, 생각 저편에 자리하고 있던 과거의 일들을 제가 쓴 글을 통해 다시 만나니, 지나가 버려 상실되어 버린 것만 같았던 감정들이, 다시 실존의 형태로 제게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활자를 쏟아내던 행위는 그렇게 제 삶에 스며들어와, 스스로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었고, 무너진 삶을 바로잡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본질과의 대면, 이성의 직관, 새로운 현재이기에 가치 있는 일이고, 비현실 가운데 부유하는 '나'라는 존재가 삶에 한발 내딛는 순간이기에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앞에 놓인 문제들과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힘들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합니다.
제 경우, 영화와 책으로 사유하며 이 버겁고 이해하기 힘든 삶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삶에 대하여, 제게 와서 닿은 영화나 책의 언어들을 매개체로 써나갈 예정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용기가 생기면, 죽음을 목도한 한 인간이, 삶이라 부를 수 없었던 어두움 속에서 부유했던 의식의 흐름들을 글을 통해 실존의 형태로 구현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의 완성은 '청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있는 음악으로써의 생명력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가 닿는 곳마다 다른 형태로 피어납니다.
혼자 메모장에 기록하던 글을,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썼습니다.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때, 나 스스로에게 더 큰 생각의 확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누군가를 위해서 이 공간에 글을 쓴다는 위선적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공감받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나를 잃은 작위적인 글을 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음악의 완성과 마찬가지로, 미완의 제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 완성되었을 때, 작은 힘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생명력이 부여됐으면 하는 바람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작은 바람을 자양분으로 삼고, 저의 내면의 소리에 따라 하나하나 열심히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영문학을 배우면서 나는 영웅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내용의 소설을 많이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쉬지 않고 세상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곧 인생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비자와 여권을 밀어 두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죽음이 삶에게 보내는 편지> 중 - 에크나트 이스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