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냉장고는 나에게 알고 싶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냉장고 문을 열면 그 안에는 까맣고 하얗게 속을 채운 봉지들로 가득했다.
냉장고 안에 든 것들은 무엇인지, 언제부터 들어가 있던 것들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새벽에 냉장고를 열며 하루를 시작했다.
먹을 것을 다듬고, 만들고, 먹고 남은 것을 어딘가에 처리했다.
엄마는 매일매일 그렇게 만들고, 차리고, 치우고, 버리는 사람이었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것들은 차가웠다. 감정이 없었다.
차가운 것들은 맛이 없었으므로, 맛있는 감각을 느끼려면 따뜻함을 가해야 했다.
우리는 엄마의 사랑이라고 불리는 온기 있는 죽음들을 맛있게 섭취하며 자랐다.
우리가 먹은 것들의 실명을 모르는 채로, 엄마의 불씨는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냉장고를 처음으로 샀다. 결혼하는 여자는 으레 냉장고를 산다. 냉장고는 이중 도어에 용량이 클수록 좋다고 했다. 쓰다가 모자라면 김치 냉장고나 냉동고를 더 사면 된다고 했다.
냉장고는 컸다. 냉장고가 집으로 배송 오는 순간 든 생각은 "이걸 어쩌지"였다.
나는 냉장고 사용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냉장고에 무엇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왜 보관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커다란 가전을 당연하다는 듯이 들인 거였다.
싱싱한 신혼과도 같았던 죽음들은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가며 곧 부패를 맞이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죽음을 알기 전, 태어나기 전부터 맛을 배운다. 어른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고 가르친다.어쩌면 '어떤 죽음은 그럴듯하게 외면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이라고 불리는 장소에는 어디에나 냉장고가 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차가운 동물들과 식물들이 뒤엉킨 냉장고를 보관하고 있다.
아 조금 너무 무겁게 썼나?
이제 냉장고를 좀 비워도 될 것 같다고.